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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알바를 그만두며

by Aroana

예상치 못하게 만 1년을 끌었던 야간 알바였다. 궁핍한 상황에서 새로운 경험에 목말라 들어간 어색한 일자리였지만, 아등바등 버티다 보니 벌써 1년여의 세월이 지나버렸다. 막상 헤어지려니 꽤나 정이 많이 든 곳이었다. 핫한 플레이스에서 일한다는 것에 묘한 자긍심도 가졌고 외국이라도 느껴도 좋을 만큼 다른 의미의 신선함이 충족되었다. 맥주라고는 카스와 하이트 밖에 몰랐던 내가 스무 가지가 넘는 종류를 알게 되었고 여러 품종의 와인, 위스키, 보드카 등을 접하게 되었다. 호주에서 스미노프를 마셨다고 우쭐대던 나의 과거 시절이 참 가여울 정도였다.


사실 원래의 계획으로는 지금쯤 세계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이 나왔어야 했다. 호주에서 제대로 쉬지 못한 스스로를 보상하기 위해서다. 시험을 위해 한국에 돌아왔고 자격증에 도전하고는 실패의 쓰라림을 맛보았다. 그러나 바로 일어서 첫 책 작업에 돌입, 퇴고 과정에서 생계를 야간 일자리로 메워가며 영상 편집을 독학했다. 여기에 또 한 번의 에세이 원고 초안을 마무리, 이를 영상에 마저 담았다.


워킹 홀리데이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꼽자면 여행다운 여행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것들의 시선을 피부로 느껴보고 냄새도 맡으며 맛보는 과정을 충분히 즐겨야 했는데 불안에 쫓겨 그러질 못했다. 아직은 좀 더 방황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건만 이내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나로서는 못 해본 것의 미련만 더 짙게 배고 말았다.


그래도 분명히 건져 올릴 소득은 있었다. 이번 일자리를 통해서는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마음 상태를 참 여러모로 느껴본 것 같다. 멍하니 새벽에 차가 지나다니는 것을 구경하기도 해보고, 비 올 때 음악을 벗 삼으며 텅 빈 가게에서의 조용한 분위기를 만끽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손님 테이블에 노트북을 켜고 마음의 기분을 글로 표현도 해봤다. 루프탑은 또 어떤가. 옥상의 테이블을 정리할 때 바라보는 야경은 그 자체만으로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어둠이 걷히고 달과 태양이 서로의 자리를 교대하는 지점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피곤에 찌든 내 감성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그래. 그 맛은 분명 달콤했었지.


외로움을 마주한다는 것이 꼭 쓸쓸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이번 알바를 통해 내가 알게 된 수확이다. 이전까지 내가 겪었던 외로움은 마냥 우울하고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팠는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외로움을 타면서도 더욱더 외로워지고 싶은 순간이 있었고 고독이 싫었지만 홀로 느꼈던 감정을 사유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어쩌면 몰래 한 모금씩 마신 술의 기운이 나를 그곳으로 안내했을지도.


그럼에도 밤에 일하는 한계는 분명했다. 낮에 글이 잘 써질 거라고 여겼던 건 내 착각에 불과했다. 친구도 자주 안 만나서 술도 덜 마실 거라는 것은 그냥 거짓말이었다. 출근과 동시에 허겁지겁 마셔대는 아메리카노는 고약한 불면증의 원인이 되었고 술 없이 깊은 잠을 자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낮과 밤이 바뀌면서 취할 수 있는 집중력의 농도는 점점 짧아졌다.


그만두어야 했던 이유 역시 명확했다. 단 한 줄로 축약할 수 있겠다. 바로 ‘심경의 변화’. 더 이상 알바만 하고 있는 나를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동안 보지 않으려 눈감았던 미래의 내 모습에서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다. 4대 보험의 적용자도 아니기에 사회에서의 내 신분이 애매했다. 더군다나 나는 이때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며 치열한 고민의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나에게 이제는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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