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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영상화하기

by Aroana

첫 책의 출간에 맞춰 유튜브를 개설했다. 독자들에게 영어로 독서하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고 영어 독서에 관한 궁금증을 알려주려는 의도였다. 나중에 책에 관한 인기가 시들해지더라도 꾸준히 해보겠다고 야심차게 다짐을 했건만 결국은... 접었다. 빈곤한 조회수가 내 의욕을 갉아 먹었다. ‘영어독서 100문 100답은 그렇게 55편에서 잠정 종료 되었다.


핑계를 대자면 첫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미 나는 또 다른 원고를 기획하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맨 처음 책으로 내려했던 부분의 줄거리였다. (나중에 ‘생각대로 산다’라는 에세이로 독립출판 되었다.) 원고의 초안이 나오자 나는 이걸 또다시 출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투고를 단행했다. 결말이 썩 밝지 않은 것이 조금은 흠이었다. 고구마를 한 움큼 퍼먹은 것 같은 불투명한 미래로 끝난 결말이 썩 개운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미팅 정도는 가능해 보이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0건, 수십 곳에 이메일을 뿌려봤으나 긍정의 답변은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다. (기존 출판사에서도 반려를 당할 정도였으니...)


어떻게 하면 이 원고를 사람들에게 알려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을 해봤다. 그러나 이마저도 탈락. 이리저리 요리조리 문맥을 바꿔 봐도 자꾸만 떨어졌다.


“네까짓 게 뭔데 나를 떨어뜨리지?!”


원고를 마냥 썩히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하는 수 없이 내 블로그에 에피소드를 조금씩 공개해 보며 다른 대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 에세이를 영상화시켜서 일종의 오디오 북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어차피 원고가 책으로 나오지 않을 바에는 이 작업을 의미 있는 방향으로 바꿔보고 싶었다. 마침, 내 손에는 약간의 영상 편집 경험이 남았고 나는 에세이를 녹음해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다시 들었을 때를 떠올려 봤다. 상상만 해도 짜릿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녹음용 마이크를 주문하고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에세이 원고를 녹음하고 편집, 거기에 해당 컨텐츠에 어울리는 이미지까지 찾아내는 것들이 쉽지는 않았다. 상상을 구체화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번에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해당 녹음의 리얼함을 살리기 위해 가족과 친구들의 목소리까지 빌렸다. 단순 녹음임에도 감정을 살리기 위해 수차례 NG를 반복하며 영상의 퀄리티에도 신경을 썼다. 특히 작업을 체계화시키는 과정이 참 어려웠다.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야지만 생계에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에 최소 1~2시간의 편집 시간이 소요되었고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니 총 62편의 에피소드가 탄생하였다. 기획하고 마무리까지 약 4~5달은 걸렸던 것 같다. 모처럼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지냈던 시간이었다.


떨리는 마음에 완성된 에세이 영상 한 편을 유튜브에 올려놓고는 수줍게 피드백을 기대했다. 결과는, 제기랄... 반응은 사실상 제로나 마찬가지였다. 하긴 뭐.. 자기만족에 가까운 컨텐츠였으니 나는 결과에 큰 의미 부여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내 에세이 오디오북은 중간중간 부침을 겪으며 2~3년에 걸쳐 게재를 마무리했다. 반응은 없었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나란 놈은 열정을 간직한 채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만으로도 만족해하는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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