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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새로운 경험

by Aroana

다시 일할 시기가 돌아왔다. 호주에서 나름 짭짤하게 벌어왔음에도 통장의 시드머니라곤 고작 백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돈의 대부분은 아파트 대출금을 갚는데 상환되었다. 짊어져야 할 책임감은 결코 내 사정을 봐주지 않아서였다. CFA 준비를 하던, 글을 쓰던, 그놈의 빚은 매달 나에게 70만 원이라는 일정액을 요구했다. 더 이상의 백수 생활은 사치였다. 나는 숨만 쉬어도 고정비만 100만 원이 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7~8개월가량을 쉬었음에도 일에 대한 부담감은 크지 않았다. 내 등을 떠미는 든든한 존재가 있었기에 사회생활은 내 인생에 선택이 아닌 ‘필수’의 영역이었다. 다만 이전처럼 전문성을 살리겠다는 허울 좋은 자기계발성 마케팅 문구에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즉 사무직은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내 시간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과감히 ’밤 일 노동‘으로 근무형태를 바꾸었다. 그리고 여기에 흥미를 안길 수 있는 보직과 함께 본능이 이끌리는 구인 게시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캐주얼 바의 바텐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의 시작이었다.


이곳을 지원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나에게 왠지 무언가 새로운 영감을 안겨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면접을 보러 가게 안을 살폈을 때 나는 이미 이곳의 인테리어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나로서는 단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이곳의 풍경은 그냥 일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큰 경험을 선사해 줄 것 같았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바로 내 적응력. 처음이 주는 낯섦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이런 곳에서 잘 해내기는 물음표였다. 그렇게 좌충우돌 가게 적응기가 시작되었다.


사실 일을 시작하고 나는 불과 며칠 만에 사장님과 매니저에게 일을 못 하겠다고 고백했었다. 그동안 내가 해온 알바 경험과 비교해서 너무 큰 이질감이 느껴진 탓이었다. 도무지 하나도 모르겠는 음식과 집기류, 모든 것이 다 나에게는 처음의 업무들이었다. 카페, 게스트 하우스, 칵테일 바, 또 가끔은 조리사로서의 모습까지, 그야말로 여기 직원은 올라운더가 요구되는 곳이었다. 잔 이라고는 ‘소주잔’이 전부였던 나에게 ‘온 더 락’ 잔과 ‘마그리타’ 잔은 이게 술잔인지 먹는 건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술은 말해 무엇 할까? 보드카와 럼, 데킬라 등만 겨우 알 뿐 이것들을 응용한 칵테일은 정말 그 이상의 멘붕이었다. 감자튀김에 들어가는 소스에 치즈소스가 들어가는지 허니 머스터드소스(둘이 비슷하게 생겼다)가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면 말 다하지 않았을까? 더 나아가 손님이 치즈 볼 과자를 부탁하자 “손님, 치즈볼은 없고 체다치즈 가루가 있는데 이거 드리면 될까요?”로 맞받아칠 정도면 진작 잘리지 않은 게 용할 정도였다.


너무나 탐낼 만큼 매력적인 곳이었지만 나로 인해 모든 게 민폐가 되는 것 같아 도저히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매니저와 사장님은 내 고충을 잘 이해해 주셨고 한가한 시간대를 만나다 보면 분명 해볼 만한 일이라고 격려도 해주셨다. 겨우 멘탈을 붙잡고 출퇴근길에 3~4번씩 레시피를 보면서 아주 천천히 내 페이스를 찾아 나갔다. 그러다 새벽이 되고 손님이 거의 없는 시간대를 접하게 되면서 야간 알바의 꽃인 ‘무료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아름다운 조명 속에 빗까지 추적추적 내리면서 칵테일을 만드는 내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여기에 음악마저 고요함을 지탱해주니 내가 일하러 온 건지, 분위기를 느끼러 온 건지 알 수조차 없었다. 최종 적응 시간까지 3개월은 넘게 걸렸으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출근하고 2~3시간은(그때까지 보통 손님이 미어터진다) 한 번도 일을 능숙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퇴근까지는 순전히 야간 술집의 바텐더이자, 가게의 관리인이 되었다. 손님과 적당히 이야기도 섞고 고민을 들어주며 취향에 어울리는 술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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