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12월이 끝나기 6일 전 크리스마스 날. 내 생애 첫 책인 ‘영어독서가 취미입니다’가 세상에 나왔다.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해냈다는 뿌듯함을 가게의 손님 및 직원들과 공유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동시에 한 편으론 비장한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얼마나 간절히 원해왔는지 알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책을 홍보해보겠노라 다짐했다.
2017년 한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책 1위인 ‘언어의 온도’에서 이기주 작가는 여섯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캐리어를 끌며 시골 책방을 누볐다 한다. 그는 면 대 면 방식을 통해 독자를 찾았다. ‘순례’라는 말까지 써가며 출판사 영업사원도 잘 가지 않는 지역까지 찾아가 작가로서의 책임감·근심·절박함을 보여주었다. 퇴고 과정을 거치면서 지칠 때마다 이기주 작가의 문장을 눈에 담았다. 그의 절박한 실행력을 나 또한 본받고 싶었다.
책이 출간되고 며칠이 지나자 곧바로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한 대학교의 영문학과 교수님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은 것이다. 곧이어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도 내 책이 소개되는 등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나는 우주의 기운이 분명 나에게 몰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코로나가 찾아왔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려고 했던 내 계획은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강연은 무기한 연장됐으며 출판사에서 계획 중이던 강연회도 돌연 취소되었다. 코로나는 사람 간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를 모두 ‘유해장소’로 변질시켰다. 가장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던 순간에 나는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마저 원천 차단당해 버리고 말았다.
억울한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크게 마음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내가 어찌 손써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튜브를 통해 직접 영어독서를 홍보해보기도 하고 도서관에 개별 연락해 강연회를 준비해보기도 했다. 또 가게에 오는 손님에게도 내 책을 홍보하고 근처의 유치원에 찾아가 기증하는가 하면, 모임 등에 참석해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최선의 노력이었다고 장담은 못 할 것 같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에서 많은 고민 속에 나온 행동이었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오히려 크게 미련을 가졌던 부분은 내가 나온 모교에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지 못한 부분이다. 처음 방문했던 모교에서 느꼈던 감정이 내 의지를 꺾어내고 말았으니 말이다.
언젠가 책을 쓰게 될 날이 온다면 꼭 내가 나온 학교에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곳도 아닌, 모교에서의 강연은 내가 정말 한 번은 욕심을 가져보고 싶은 버킷리스트였다. 더군다나 초·중·고를 모두 시골 자락에서 자랐기에 내 드림리스트는 명분이 있었다. 분명 희소하다고 생각했고 학교에서도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일부로 평일을 쉬는 날로 잡고 첫 모교인 초등학교에 찾아가게 되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긴장에 핫식스도 하나 마시며 어떻게 책을 소개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학교에 다다른 나는 현관 정문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는 조금 당황했다. 곧이어 어떻게 하면 교무실을 찾아갈지 생각해보다가 뒤편으로도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돌아갔다. 뒤이어 교무실을 발견하고 들어가려던 찰나 선생님 한 분이 나오시더니 멀리서 무슨 일 때문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 학교 졸업생이라고 밝히면서 최근에 책을 한 권 썼는데 여기에 기증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책을 건넸다. 곧이어 선생님이 놓고 가라고 이야기하자 더 이상의 대화가 끊긴 나는 그만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결국 우물쭈물하며 책만 덩그러니 놓고 나왔다. 그 자리에서 느낀 씁쓸함과 조금의 창피함은 얼굴까지 붉혀졌다.
적절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아무튼 그때 조금 많이 상처를 받았다. 뭔가 내가 그곳 사람들을 귀찮게 한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 내가 받은 대접에도 괜히 서운함을 느꼈다. 조금은 더 따뜻한 환대를 기대했으나 냉정한 무관심에 내가 가진 마음이 갑자기 확 식어버렸다. 이런 감정이었을까? 좋은 소식을 가지고 가족들의 품에 왔는데 아무도 날 반가워하지 않는 느낌? 물론 갑작스럽게 찾아온 내 방식도 서툴렀지만 그래도 모교인데... 내가 지녔던 과거의 따뜻한 추억이 뭔가 바래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훌훌 털고 더 잘 준비해서 중학교, 고등학교, 나아가 대학교까지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크다. 지나 보면 사실 별것 아녔는데 당시 나는 이런 감정들에 무척 여렸다. 첫발을 내디뎌 어렵사리 고백을 했는데 차여버리면 다시 하는 게 두려운 마음. 딱 그런 상태였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모교에서 강연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