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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줄 곳 없는 삶에서

by Aroana


주말, 쉬는 날이 찾아오면 정말 미칠듯한 외로움이 몰려온다. 세상 속에 나만 고립되는 느낌이고 어쩌면 이렇게 나만 외톨이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을 붙일 곳도 없고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친구가 마땅치 않다. 결국 혼자서 쓸쓸함을 온몸으로 매 맞는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씻고 잠시 멍하니 눈을 붙인다. 이미 밤을 꼴딱 새서 피곤할 법도 한데 자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다시 눈을 뜨고 피아노 학원에 갈 준비를 한다. 수업은 12시지만 한두 시간 일찍 도착해 미리 연습한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면 다시 2시간 정도 추가 연습을 한다. 애초에 평일 연습을 많이 하지 못한 걸 주말에 몰아서 하는 격이다. 시간도 잘 가고 명분도 훌륭하다.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면 대개 학원에서 5시까지 시간을 보낸다. 피아노도 쳤다가 핸드폰도 했다가 어영부영 시간을 죽인다. 서서히 해질 녘이 보일쯤엔 노트북을 챙기고 카페에 간다. 미처 다 쓰지 못한 이 책의 에피소드를 작성하기 위함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면서 뉴스 기사를 검색하다가 글쓰기에 돌입한다. 그렇게 또 2시간이 흐른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한밤중에 달이 떠올랐다. 오늘의 일과도 이것으로 마감이다.


열심히 사는 것 같아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보지만 그야말로 거짓이다. 오늘의 나는 시간 죽이기 게임을 한 것에 불과하다. 틈틈이 오픈 카톡방을 드나들었고 동네의 커뮤니티 모임에 갈만한 장소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다 결국 날이 저물었다. 다들 저마다 바쁜 삶에 치여 사는데 나만 또 혼자가 되었다. 거리를 배회할 바에야 카페에 들어가 바쁜 척 웹 서핑을 한다. 공간에 들어선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척 연기한다.


깊은 관계가 아닌 이상 내가 지닌 진짜 감정을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사람에게 감정을 기댈 만큼 나약하지 않다는 뜻이고,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이 내 감정을 ‘귀찮게’ 여길까봐 말하는 것이 불편하다.

인간관계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 무수히 많은 취미거리를 만들어냈다. 적어도 취미는 내가 아무리 애착을 보이고 열정을 다해도 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나를 귀찮아하지 않고 멀리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가까이 다가서려 하는 만큼 언제나 활짝 문을 열어준다. 집중력만 받쳐 준다면 그들은 오히려 내 집착을 이용하려 든다. 그들에게 감정이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쉬울 따름이다.


요즘 들어 속 편히 얘기할 친구가 없다는 것에 자꾸만 자괴감이 든다. 모임이든 어디서든, “자신이 없다”, “외롭다”, “삶이 버겁다” 등등의 표현을 쓰지 못하는 내 자신이 처량할 때도 있다. 어깨가 축 처지면 운동으로 이를 해소하려 하고 친구와의 깊은 대화가 필요하면 에세이를 통해 간접 경험으로 대체한다. 그러나 이것들이 정말 내가 필요로 한 것일까? 운동으로 어깨를 단련시킨다 한들 과연 내 어깨가 안 무거워질까? 에세이를 통해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한들 내 속이 다 시원해질까? 이러한 말들을 나 대신 뱉어주는 누군가가 있다 한들 내 마음이 후련할 리 없다. 내 짐을 일부라도 기댈 수 있는 친구에게, 내 찌질함마저도 포장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고민을 공유하고 싶고 위로를 듣고 싶다. 정말 다만 그뿐이다.


카페에 나서면서 서서히 허기가 진다. 모처럼의 쉬는 날인데 한 잔을 또 맛있게 먹어줘야 이러한 감정들이 소화된다. 오늘 만들어볼 요리는 제육볶음이다. 재료를 손수 준비하고 음식에 정성을 들일 때 묵은 감정도 같이 배출된다. 그렇게 오늘 밤 내가 마지막으로 마음을 준 대상은 술안주다. 오늘 느꼈던 삶의 쓸쓸함과 고립이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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