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싸다구를 맞으면서도 행복한 일이 있을까

by Aroana

CFA 시험에 또 한 번 미끄러졌다. 결과를 기다리며 한 달 만에 써낸 원고를 볼 때면 막막한 심정마저 들었다.


"내가 진짜 책을 출간할 수 있을까?"


뭐만 하면 실패가 먼저 떠오른 탓에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이전의 결과물 마저 미끄러진 상태에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며 투고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어이 꾸역 꾸역 서점에 가서 책의 출판 정보를 수집했다. 서점 직원이 함부로 책 내용을 사진 찍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해줬을 때는 많은 민망함이 몰려왔다.


"그게 아니고 여기 투고를 목적으로 책의 출판사와 이메일만 좀 정리하려고 한 것이었어요"


그냥 당당히 말하면 됐을 텐데 나는 양심에 찔린 나머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사진 대신 메모지에 내용을 기록했다. 그렇게 눈치싸움 하듯 조심스럽게 이메일을 모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1%도 되지 않는 성공률에 희망을 가지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기적처럼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생각보다 해야 할 것이 정말 많았다. 원고의 일부를 드러내 새로운 내용을 추가 해야 했으며 유튜브를 통해 마케팅을 하겠다는 포부도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 내야 했다.


나는 이번 기회가 내 인생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최선을 다해 원고 수정을 이어 나갔다. 어쩌면 초안을 작성 했을 때 보다 더 많은 집중력과 스트레스를 느끼며 작업에 임했다. 철저히 고립되어 진행하는 퇴고 과정은 생각보다 많이 외로운 작업이었다. 서점에 앉아 나보다 잘 나가는 저자들의 문장과 비교하며 내 언어를 써내는 일은 솔직히 두려움과 떨림의 교차가 수시로 일었다. 할당량의 퇴고를 마친 뒤 집에 가는 저녁의 퇴근길은 그야말로 녹초, 온 몸의 진이 다 빠져나갔다.


첫 유튜브 영상을 제작할 때는 정말 가관이었다. '프리미어 프로' 프로그램을 처음 사용해 본 터리 익히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샘플에 대한 샘플 영상을 만들고 도저히 어디에도 게시할 수 없어 바로 폐기처분 한 후 다시 영상을 제작했다. 유튜버들이 말하는 것처럼 영상 1분 만드는 데 1시간이 걸린다는 게 과연 과장이 아니었다. 나는 20분짜리 단순한 영상을 만드는 데만 꼬박 3일이 걸렸다. 분명 3일 동안 죽어라 무엇을 한 것 같긴 한데 그 작업물을 확인해 보니... 세상에 이런 쓰레기가 없었다. 이 때의 허탈감. 분명 나는 그 때 미쳐있었는데 말이다. 유튜브 영상을 만들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아이디어를 컨텐츠로 구체화 시킨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영역이구나"


처음으로 영상 제작이라는 것을 해보면서 구체화의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단지 영상 제작 뿐 만 아니라 내 삶의 모든 것에도 일견 통용되는 것들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단지 아이디어로만 머문 것을 실행으로 옮겨 가는 과정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에서 실체를 띠어야 한다. 그것들이 하나 하나 행동으로 이뤄졌을 때 비로소 결과물이 탄생한다. 여기서 배우 허성태의 명언이 떠올랐다.


"아! 싸다구를 맞으면서도 행복한 직업이 있구나"


정말 신기한 것은 퇴고하는 과정을 거치고 3일 밤낮 동안 영상 제작에 미쳐 있었음에도 그 과정이 결코 싫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비록 체력이 녹초가 되고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얻었음에도 나 자신에게는 무언가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어쩌면 나도 지금 싸다구를 맞아가면서 행복해하고 있는 것일까?

keyword
이전 13화인생 최대의 방황기, 심지에 불을 붙이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