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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대의 방황기, 심지에 불을 붙이는 과정

by Aroana

사무직 직장을 3개월 만에 그만두고 곧 내 인생 최대 방황기가 시작되었다. 그 삶의 과정은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추억’이란 이름으로 ‘발효’된 거지 결코 아름다운 과정은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고생을 했고 불가능한 꿈을 실현해보려고 발악을 하기도 했지만, 인생에 가장 큰 울림을 준 시기이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지금까지의 과거는 불에 타기 위한 심지를 모으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 심지에 불을 붙이는 단계라고나 할까? 불이 자꾸 꺼지니까 이걸 어떻게 하면 살려볼까를 계속 고민하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는 그런 시절이었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이 시절을 가두기에는 불가능하다. 내가 말하는 방황기라 불리는 시기는 짧게는 6개월에서 길면 3~4년까지 걸쳐 이어지는 장대한 서사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것과 관련된 내용이 ‘생각대로 산다’라는 독립 출판물로 발표한 적이 있었고 개정을 거쳐 시중에는 ‘호주 반 평 집에서 행복을 느끼는 법’이라는 에세이로 공개된 적이 있다. 그 만큼 기록할 것이 많은 순간을 보냈고 이는 돌이켜 내가 가장 애장하는 시절이 되었다. 여기서는 불꽃 같았던 경험을 짧게 요약하며 왜 내가 이 시절을 특별히 여기게 되었는지 생각을 밝히겠다.


퇴사를 하고 나는 곧바로 판매직 알바로 속옷 판매(깔세 정리)를 3개월간 했다. 그 이후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가기로 마음을 먹고는 본격적으로 돈을 모으기 위해 6개월 간 투 잡(볼링장 관리, 식당 서빙)을 병행했다. 투 잡과 함께 그 동안 놓았던 영어를 다시 붙들어 매고는 회화책 한 권을 달달 외우며 호주에 가기 전 실력을 조금이나마 쌓았다. 그렇게 간 호주에서 신나게 현실을 두들겨 맞고는 다시 부딪혀 나에게 맞는 영어공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곧이어 취미의 수단으로 영어를 대하는 자세를 터득하게 되었고 영어독서라는 나만의 노하우를 책을 통해 공유하는 귀중한 경험을 얻었다. 그리고 이 같은 시도들은 지금껏 내가 걷는 길에 조금은 라이트를 비추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내가 사무직 직장을 그만둘 때를 인생의 방황기라 부르는 이유는 이 당시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도 없이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빚을 같이 갚는다는 명목으로 엄마로부터 매달 70만 원씩 지원해주면서 생활비를 벌어가야 했다. 과거처럼 일주일에 1~2일 일하고 다시 취준을 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되지 않았다. 일단 일을 하면서 앞날을 도모해보자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었고 재취업에 관심이 없다면 사회경험을 쌓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쩌면 이 때의 섣부른 방향전환이 내가 나다운 삶을 사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최초의 반항이었지 않나 싶다. 그렇게 해서 다행히 또 다른 목표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워홀 자금 마련을 위해 하루에 3~4시간씩만 자는 미친듯한 노동강도를 보이며 원하는 것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투 잡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게 맞는 적정급여(내가 얼마 이상을 벌어야 만족을 느끼는지) 가치를 생각해보게 되었고 나라는 놈이 대체 누구인지 조금 더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면을 내가 잘 견디고 어떤 면을 잘 못 견뎌내는지, 나란 놈의 장점과 단점이 진짜 무엇인지 등 자소서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나란 놈의 가치를 몸으로 깨우쳐 나가던 시절이었다. 직장을 다닐 때 나는 무엇을 최우선으로 여기는지 알 수 있었고 내 결정이 주변과 충돌할 때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도 모두 다 시기에 배울 수 있었다. 자유를 얻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이 때 참 많이 느낀 것 같다. 현실적으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은 내가 고집을 피우면서까지 가져가야 하는지 등 이 시기는 그야말로 삶을 사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다. 도전해서 얻은 성과에 대해 뿌듯한 적도 많았지만 굴욕도 당해봤고 서러워서 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느낀 감정의 솔직함을 부정하는 게 아닌 인정하고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도 전부 이 때 배웠다.


도전에 대한 건강한 실패(호주에서 다시 CFA 시험을 보기로 마음 먹고 한국에 와서 도전했지만, 또 떨어졌다.), 이 시기를 통해 내가 도전에 대처하는 자세이다. 그러니 내가 이 때의 시절을 가장 좋아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내 인생 철학의 70%는 아마 이 때 다 확립되었을 것이다.

짧은 인생이지만 가장 강렬했던 시절을 말해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때를 이야기한다. 삶에서 스파크가 튀던 시절, 그렇게 심지에 불은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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