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8일 일기
오늘은 회사 다닌 지 약 2주를 조금 넘긴 시점이다. 그간 느낀 점을 말해보자면 확실히 처음에 다녔던 그런 마음가짐이 많이 없어졌다. 그때는 업무를 전혀 모른 것도 있었고 걱정, 기대보다는 설렘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설렘 같은 것은 없어진지 오래였고 그냥 걱정만 있다. 솔직히 이게 내 심정이다. 그나마 회사 다니면서 걱정에 대한 맷집이 조금씩 쌓여가지만 입사하고 근 2주 동안은 정말 별의 별 생각이 다 났었다. 회사 가는 게 너무나 싫었고 정말로 다른 회사에 들어가는 꿈을 꿀 정도였다. 또 몇 일 동안은 불면증에도 시달렸다. 정말 지독한 스트레스였다. 입사하고 첫 일주일 동안은 엄마와 누나가 외국으로 단기여행을 갔기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 때 마다 매일 술을 마셔댔다. 힘들 게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반겨주는 사람 한 명 없는 게 미치도록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2주 차가 되어서야 술에 대한 의존도가 겨우 낮아지긴 했으나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 만큼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서 사무직이다 보니 출퇴근이 먼 것을 제외하고는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육체적 부담과는 달리 정신적 스트레스는 진짜 내 모든 삶을 망가뜨렸다. 업무 못하는 걸로 혼나는데... 이게 정말 이 정도까지 사람 미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이것저것 실수하고 멍 때리고, 말귀도 못 알아듣고 하니까 회사에 가닌 것 자체가 정말 엄청난 고역처럼 느껴졌다.
"아... 여기를 다녀야 하나? 정말 꼭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솔직히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여전하다. 덕분에 식욕은 많이 줄어서 폭식할 일은 없었다. 옛날에는 몰랐다. 스트레스 받으면 입맛도 없다는 것을... 그런데 그걸 지금 내가 하고 있다. 진자 입맛이 별로 없다. 차라리 술을 준다면 모를까...
월급도 적게 줘 내가 취업 후 상상했던 계획들을 하나도 실천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시 다른 회사 지원해볼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회사 입사하고 가졌던 첫 느낌과는 지금 쓰고 있는 감정을 비교해보면 내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하는 업무는 인사 업무다. 하지만 오늘 총무 업무가 포함되었다. 비품관리를 내가 해야 하고 남자 신입이라 그런가 여기저기 각종 AS를 담당한다. 그냥 말 그대로 인사가 주 업무이긴 하지만 그 외 각종 잡일 역시 내가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참 웃긴 것 같다. 분명 회계를 지원했는데 지금은 그냥 경영지원팀의 따까리다. 하긴.. 중소기업이니까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확실히 시스템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을 혼자서 부딪히면서 한다는 게 솔직히 다양한 업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으로 포장될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 깔린 안 좋은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냥 다양한 업무를 배우는 게 아니라 깨지고, 또 쳐 발리면서 조금씩 알아나가는 것이다.
대리님은 이제 나에 대한 기대치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뭐 많은 실수를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처음에 저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뭘 잘해야 겠다는 마음보다는 "아.. 그지 같은 회사.. 그냥 때려치고 다시 알아볼까?" 하는 심정이 더 컸다.
아.. 지금도 솔직히 회사에 정이 가질 않는다. 일이 재미있기를 기대 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회계직으로 지원했는데 인사쪽 일을 하니까.. 더 내가 괴로워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 각종 잡일도 계속 하고 있고.. 아 모르겠다. 그냥 다른 거 다 제껴 두더라도 다시 한 번 회사에 열정을 가져봐야겠다. 이제 12시다. 오늘은 불면증에 안 걸리고 바로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전 편의 에피소드와는 무색하게 입사하고 2주차의 느낀점이 이렇게 적나라할 줄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다행히 일기에는 입사 후 2일차에 썼던 일기도 있었는데 그 때는 반대로 희망 섞인 내용의 글이 더 많았다. 도대체 2주 만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내 심경의 변화가 이리도 바뀌었을까?
그 시절로 빙의해 보자면 당시 나는 첫 회사 생활에서 긴장을 너무 많이 한 것이 주된 원인이지 않나 싶다. 첫 입사 치고는 내가 할 줄 아는 게 정말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내야 해야 하는 고정업무란 것이 없었고 처음부터 시키는 대로, 양식은 존재하는 게 없이 그냥 부딪쳐 작성해야 하다 보니 이건 뭐 업무 자체에서부터 멘붕이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유도리 있게 나도 업무를 좀 해나가고 싶었지만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사수로부터 확인을 받아야 했다. 여기에 PC나 프린터에서 뭐 하나 사소한 오류라도 터지면 그 업무의 해결사 역할을 맡는 것도 나였다. 그러니 처음부터 머리가 하얗게 질릴 수 밖에...
대리의 성격이 기분파였던 것도 내가 스트레스를 받은 주 원인 중에 하나였지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놈의 빡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긴 했다. 경영지원부서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그 사람 뿐이었고 나머지 두명(나와 일주일 먼저 들어온 동기)은 사실상 그냥 보조에도 못 미치는 인력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동기생은 (일기를 쓰는 시점)그 달에 퇴사를 해버려 사수는 더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고 나는 뭐.. 그 대리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처지까지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입사 후 거의 곧바로 터지는 바람에 나는 적응이라고 할 것도 없이 바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한 달만에 퇴사를 걱정하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낮은 급여와 2시간씩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 겉으로 표현되는 불만이었다면 업무 적응에 사실상 실패한 것에서 오는 자괴감이 나를 가장 크게 괴롭혔다. 아무리 중소기업이라지만 제대로 케어 받지를 못하는 바람에 입사 첫 달부터 회사에 온갖 정이 떨어져 버린 게 지금에서보면 아쉬운 구석이다.
일기를 쓰고 퇴사를 하기 까지는 두 달이 더 걸렸다. 어떻게든 정을 붙이고 회식에도 참여하며 나름 고군분투 했지만 결국 역부족이었다. 뒤에 직원을 한 명 더 뽑았지만 그 친구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해고를 당했다. 거의 1년이 걸려 취업한 경영지원부서였지만 나는 제대로 맛을 보기도 전에 이 부서에 그냥 질려 버렸다.
"중소기업에서 경영지원부서란 이 정도의 취급과 대우를 받는구나"
일반 직장에서라면 흔하게 겪는 그 정도의 스트레스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업무를 익힌다는 것에 엄청난 피로감을 느낄 무렵, 나는 대리놈의 기분 나쁜 갈굼에 빡친 채 결국 퇴사를 질러버렸다. 이후의 후임자로는 사수와 상의를 해 결국 경력집을 뽑기로 했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팀장으로 승진한 사수의 지위를 위협할 경력직 직원을 채용해 둘이서 업무를 이끌어 나가는 게 왠지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애초에 여기는 신입이 들어올 곳이 아니었다.
이 회사를 끝으로 경영지원부서에 미련을 갖지 않는 것이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