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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취업 필살기

by Aroana

취업준비 할 때는 정말 수많은 자소서 책을 참고했던 것 같다. 애초에 토익 점수가 낮기에 전형 자체가 까다로운 회사에 지원할 수 없어서였다. 이를 테면 뭔가의 점수나 시험을 요구하는 회사들은 전부 다 걸러버렸고 적성검사를 보는 회사마저 그냥 제껴 버렸다. 사실은 그렇게까지 가고 싶은 회사도 없었고 대기업이나 (튼실한)중견기업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정확히 말해서는 뽑아 주지 않을 것 같으니 내가 먼저 등 돌린 것이다) 운 좋게 취준 초기에 상장 기업의 재무팀에 면접까지 본 경험이 있었으나 그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 다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자소서를 이렇게도 수정해보고 저렇게도 고쳐보면서 마음에선 '정말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취업성공패키지'에서 제공한 취업상담도 크게 도움 되진 않았던 것 같다. 재무팀의 희망 취업을 위해 회계사무소의 실무경력을 쌓고 오라는 조언이 영 끌리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내가 가진 재무 자격증으로 입증할 수 있는 건 오직 회계 지식의 '기본기' 따위가 고작이었다. 오히려 중요한 실무 능력은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았다. 아니, 검증이랄 것도 없고 그냥 '신인' 그 자체였으니까. 취업 준비를 하면서 나를 어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 봤다. 자소서로는 한계가 있고 공부해온 자격증은 재경관리사를 제외하면 전부 금융 계통이니 희망 직무와는 무관했다. 전산 프로그램도 다룰 줄 몰라 실무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도저히 내세울 게 없었다. 어떻게 하면 그들과 함께 비벼볼 수 있을까? 떠오른 묘안은 딱 하나였다.


"그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보자!"


배웠던 것을 썩히는 게 아까웠던 나는 다시 예전에 공부햇던 회계·금융 내용을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로 만들어 보고자 생각했다. 단순히 회계 이론을 아는 사람이 아닌, 회계와 금융 정보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장래가 유망한 사람이라는 것을 포트폴리오가 어느 정도 보완해줄 것이라 믿었다.


생각이 결론에 다다르자 당장 자소서로 소설쓰기를 멈췄다. 그리고는 도서관에서 회계와 금융 관련 책을 빌려보며 내용을 공책에 따로 요약 기록했다. 두 달 정도가 지난 후부터는 노트의 내용을 참고하며 나만의 기업분석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회사의 50pt 분량 보고서가 나오자 재무 관련 학습에 자신감이 붙었다. 이전 첫 면접에서는 '관리회계'의 정의를 어버버 거린 것에 속이 쓰렸으나 이제는 각 각의 용어에 대한 정의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신감이 붙으니 다시 여러 곳에 지원서를 넣어 가며 추가로 기업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꽤나 바쁜 생활을 보냈다.


포트폴리오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더는 자소서를 여러 번 고치지 않아도 포트폴리오를 추가한 것만으로도 면접 횟수가 늘었다. 현장에서 나는 준비한 포트폴리오를 바인더화 하여 면접관에게 제출하는가 하면 그동안 공부해온 노트필기도 직접 보여주는 등 나만의 면접 필살기를 가감 없이 발휘했다.


장담컨대 면접을 보면서 나처럼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만큼 내가 준비한 것은 임팩트 면에서는 괜찮았다. 문제는 이 과정을 흥미롭게 봐주느냐 그렇지 않냐의 차이였는데, 현실적으로는 이렇게 준비한다 한들 실무 경험이 있는 사람과는 애초에 비교 대상이 될 순 없었다. 서류도 여러 차례 통과되고 면접 기회도 비약적으로 늘었지만 경력·신입자 앞에서는 늘 탈락 대상 1순위였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았다. 일단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스스로에게도 유익한 경험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결국 취업에 성공했다!


PS. 취업의 필살기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지만 사실 지나고 보면 도전을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로 만들어내려는 시도 자체가 내 인생의 필살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 그 때는 주변에서도 취준생이 다시 개념서를 본다는 게 멍청하고 한심하다고 생각했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에서 보니 이때부터 어떤 싹이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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