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를 선언하고 10여 개월 만에 드디어 의미 있는 첫 직장을 갖게 되었다. 드디어 나도 당당히 삶을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에피소드는 조금 특별한 시각으로 써보려고 한다. 이 당시 나에게, 첫 직장이 주는 의미가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내가 왜 그토록 사무직 일자리에 매달리려 했는지의 이유를 설명해보려 한다.
첫 직장으로 가기까지, 내 입장에서는 정상적인(또는 사회에서 '표준'이라 불리우는) 삶으로 회귀하는 과정이었다. 이전에 목표로 했던 꿈(애널리스트)을 포기하고 열정만으로 불태울 수 있으리라 자신했던 영업직도 버텨내지 못하는, 이제는 힘 빼고 눈에 비친 자기의 현실을 냉혹하게 바라보는 시기였다. 실비(만 원도 되지 않는) 낼 돈 조차 없어서 가지고 있던 보험도 깨야 했고 저축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누나, 엄마와 함께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20만 원을 보태고 여기에 가족계 5만 원을 내고 나면 고작 30여만 원 정도가 내가 배송 알바를 하며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생활비였다.
취준생이었을 때는 수중에 50만 원만 잔액으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아 참 많이 들었다. 아직은 내 수준에 맞는 적정 급여를 인식하는 단계가 아니었기에 그저 100만 원만 벌 수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물론 100만 원, 아니 그 이상도 벌 수 있는 일자리는 많았다. 그러나 내가 굳이 '취업'의 문을 두드리려 했던 이유는 적어도 원하는 직무에서 한 번쯤은 일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장 컸다. 어차피 대기업을 못 갈 바에야 작은 기업에서라도 관심 있는 직무를 경험해보는 것이 삶에 한 번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경영지원부서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회계와 인사·총무가 기업의 뼈대를 이룬다고 책에서 배웠다) 그리고 나는 중소기업이지만 성장성이 기대되는 회사에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20대의 나에게 취준을 마쳤다는 것은 이제 곧 '사회인'을 의미했다. 어릴 적 우정이 아닌 사회에서의 관계를 중시하고 외적인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입사 합격을 하고는 당장 아울렛에 가서 다수의 캐주얼 정장을 구매했고 신발도 운동화가 아닌 세미슈즈를 신으며 한껏 초년생의 티를 표출했다.
아침 일찍 문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퇴근 시간에는 저무는 해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거리 곳곳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배송 직원들을 볼 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있었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점심시간 후 직원들과 카페에서 갖는 티타임의 여유로움은 말할 것도 없었고 내 자리의 듀얼 모니터를 바라보며 이메일을 체크하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정말 회사원이 된 것 같은 느낌. 아니, 이제는 정말 회사원이 되었다!
내가 회사원의 삶을 목표로 했던 이유는 이전의 내 직장, 즉 보험설계사로서의 여파가 워낙 컸던 탓도 있다. 3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거기서 터진 후폭풍은 직장을 바라보는 개념을 보기 좋게 바꿔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고정급여가 들어온다는 것. 이 한 단어가 얼마나 내 어깨를 든든하게 해주는지는 앞으로의 삶을 사는데도 귀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또 하나는 사회의 시선 그 자체였다. 사람들에게 이전의 내 직장을 보험설계사라고 표현할 때와 회사원이라고 소개할 때의 반응이 너무 큰 차이가 났다. 어쩌면 이때부터 나는 사회의 시선에는 나를 가두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안에서는 그 곳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려 했던 것 같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가 연상되는 도돌이표이다.
27살의 첫 취업에 내가 느꼈던 감정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행복', '즐거움', '기대' 같은 단어가 아닌 '다행히도'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어쩌면 무사히 (내적인)안정을 찾았다는 내 자신을 쓰다듬으며 했을 법한 표현이다. 노가다를 통해 300만 원 언저리의 비상금을 들고 서울에 와서 1년 반 동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시간을 허비해버렸다. 달리 말하면 꿈을 포기하고 이를 인정, 다시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만큼 걸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맞은 27살의 여름은 '다행히도' 아직은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나이에 한 첫 취업이 전혀 늦었다고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비록 방황을 했지만 남들과 비슷한 출발선이었고 나보다 한 달 먼저 들어온 여직원의 나이는 나와 같았다.
이제 정말 나는 사회에 녹아들 수 있는 사람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