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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9편)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by Aroana

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이렇게까지 내 감정을 담아 블로그에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퇴사와 관련해 가족과 대화하며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나는 엄마와 셋째 누나에게 내가 가진 생각을 밝히며 내 입장이 존중받기를 원했는데 가차 없이 거절당했다. 내 시도는 무모한 도전이 되어버렸고 뭔가 주장을 한다는 것이 마치 애걸복걸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원래는 그냥 묻어가려 했다. 가족 간 대화가 안 풀리는 것이 하루이틀도 아니었고 적당히 언성 높이며 끝나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말이다. 이 정도 상처쯤이야 가볍게 치유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나는 빠른 회복을 자신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도저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분한 마음에 그냥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작았던 무기력증이 점점 커져 만성으로 변할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갑자기 이런 자신을 보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단순히 무기력을 넘어 그동안 억지로 끌고 왔던 내 꿈들을 지켜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라도 감정 호소를 하지 않으면 왠지 내 자신에게 마저 혐오감이 들 것 같았다. 부여잡던 머리채를 놓아주며 책상 앞에 앉았다. 스스로에게만이라도 위로하고자 최근 있었던 일을 복기하며 일기라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들어간 지 한 달도 채 안 된 회사에 결국은 퇴사 통보를 했다. 그것을 결정하기까지 정말 괴로운 정신적 고통을 가졌다. 겉으로 보기엔 새벽 늦은 시간 동안 술만 마시고 피곤에 찌든 삶으로 치환되었지만 맹세컨대 술은 결코 달지 않았다. 나는 처음 겪어보는 이런 감정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당시 내가 가졌던 고민은 이거였다. 회사원 생활로 나를 숨기면서 글을 쓰려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무척 힘든 생활이라는 것을 느꼈다. 집에 오면 단순히 피곤하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일의 고됨보다는 결국 내 정신력이 문제였다. 회사 안에서 나는 늘 딴 생각을 했고 팀장은 이런 나를 못마땅해 여겼다. 집중을 못 하니 일머리가 늘기는커녕 자꾸만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래 다니며 편하게 글이나 쓰자는 생각을 가진 게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발상인지, 회사는 결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주에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셨던 이유는 이랬다. 만약 이 회사를 그만두고 또 다른 직업을 구한다면 도대체 어떤 회사를 다녀야 할지, 과연 이런 내 마인드를 받아주려는 회사가 있는지 등에 대한 걱정이었다. 기획해 놓은 주제, 쓰고 싶은 글이... 아직은 한 가득이라 회사원이라는 직함에 감춰 조용히 글을 쓰고 싶었다.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에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이 이상 나를 평범하게 포장해 줄 수 있는 문구를 찾지 못했다. 소개는 완벽했으며 적당한 겸손과 무난함이 드러난 자기소개였다. 하지만 앞으로의 내 직업이 회사원이 될 수 없다면...(이런 내 정신력을 받아줄 회사는 없어 보였다) 나는 그때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용기가 없었다. 내년이면 32살이고 나를 대표할 수 있는 사회적 신분에 대한 압박도 느끼고 있었다.


뭔가를 감추면서 생활한다는 삶 자체가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거기서 오는 절망감도 컸다. 회사원의 직함에 나를 감추기에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못난 직원이었다. 말 그대로 월급 루팡하면서 생활한다는 것 아닌가. 충성을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목숨 바치겠다 맹세하고, 성장할 생각도 없으면서 발전하겠다고 거짓말하고. 이 마인드를 숨긴다고 한 들 숨길 수가 없었다. 애초에 나는 그렇게 눈치 빠른 아이가 아니었고 적응력이 뛰어난 편은 더더욱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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