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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13편) 엄마와의 말다툼 3편

by Aroana

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걱정 마 엄마, 내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나왔어도 우리 집 빚 갚는 데는 문제없게 해 줄게!”

- ‘호주 반 평 집에서 행복을 느끼는 법’ 中 -


잠시 엄마가 아파트를 매입한 시기로 돌아가자면 때는 2016년, 내 나이가 27살쯤이었다. 엄마는 그 뒤 운 좋게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조금 더 큰 평수로 갈아타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엄마는 이때 진 빚을 혼자 감당할 여유는 되지 못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였다. 첫째, 둘째 누나는 이미 가정이 있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고 셋째 누나는 미래에 있을 결혼 자금 마련을 이유로 같이 갚아나갈 수 없었다. 반면 이때 나는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엄마를 안심시켰다. 어차피 사회생활을 할 거면 계속해서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랬다. 나는 저축한다는 셈 치고 빚을 갚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하에 버는 족족 많은 부분을 대출금 상환에 힘썼다.


약속한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4년이 흘렀다. 이때까지 나는 단 한 차례로 엄마에게 돈을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잡혀버린 워킹 홀리데이에도 투 잡을 하며 자본금을 모으면서까지 엄마의 대출금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았다. 호주에 가서도 6개월에 한 번씩 약속된 금액을 상환했고 귀국 후 자격증을 준비한다고 쉬었을 때도 기간만큼을 선불로 낼 만큼 내가 감당할 의무는 지켰다. 또래 친구들만큼의 연봉은 못 가졌을지언정 그들이 저축하는 만큼 나도 저축액을 늘려갔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물론 실패한 것도 있었지만 영어를 포기하지 않았고 관련 내용을 책으로 엮을 만큼 의미 있는 성과도 가져갔다. 적어도 나는 하고 싶은 것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해온 것에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내 노력이 엄마의 눈에는 가당치도 않았나 보다. 여전히 내 앞날이 걱정된다며 이 집만을 바라보는 나를 경계했고 ‘도와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며 나를 몰아붙였다. 솔직히 많이 불쾌했다. 엄마의 입장에 따르면 나는 그저 도움이나 받아 가며 집에서 밥이나 축내는 그런 철딱서니 없는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단 말인가. 도대체 나는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하면서까지 나에게 경각심을 주려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사 안정된 직장을 가지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한들 적어도 내가 해온 노력을 그렇게 쉽게 폄하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돈을 갚는 입장에서 나는 엄마와 동일하게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엄마가 초기에 많은 돈을 낸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었고 여기에 나는 성실히 내 의무를 다했다. 엄마가 이 집을 바라보는 것만큼 나도 이 집에서 내 역할을 중요시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내가 엄마에게 크게 실망한 부분은 지금껏 보여왔던 내 책임감이 그저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다는 데 있다. 4년 내내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는데 엄마는 그건 과거의 일이고 여전히 미래의 나만 걱정할 뿐이다. 살아오는 동안 가족의 이름 앞에 먹칠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가족은 여전히 내 태도를 한심하게 여기고는 내 꿈의 미래에 모두 고개를 내 저었다. 엄마는 애써 지금껏 잘해오고 있다는 말로 나를 포장했지만, 그것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냐는 물음에는 부정적이었다. 아니, 나아가 이미 어떤 결론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엄마는 분명 아들과 진지한 대화를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화는 깔끔하게 종결되었고 술을 조절하겠다는 아들의 대답은 꽤나 그럴싸했으니까. 그러나 할 수 있는 대답이 많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번 대화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떤 속내를 내비칠 수도 없었고 가슴에 쌓인 응어리만 더욱더 뭉치기만 했다. 대화는 마무리되었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노트북을 켜고 이 분하고 답답함을 표출할 짧은 글을 하나 남겼다. 유독 차가운 냉기만이 감싸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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