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에 실패할 용기를 가지며 도전하기

by Aroana

대표님과 대화하며 내내 떠올렸던 것은 이번 도전은 결코 일과 병행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심지어 사실상 기존 원고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단순직이었다면 분명 같이 했을 텐데, 기자의 삶에서 내 글을 쓴다는 것은 현실을 겪고 있는 내가 가장 잘 알았다. 그렇게 나는 선택의 기로에서 또 한 번 운명을 결정짓고 말았다.


현시점에서 기자를 그만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다시는 (나이에 어울리는)사회적 지위에 어울리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신입으로 들어가는 나이는 이미 마지노선을 넘었고 (소위 말하는)회사원으로서의 커리어는 기자가 종착지였다.


그런데도 참 아이러니한 감정이 들었던 것은 ‘돈을 벌며 기자를 계속 해볼래’ 아니면 ‘돈은 생계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글을 써볼래’의 고민에 내가 지닌 반응이 너무 명확했다. 다시 한번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책이 나에게 돈 한 푼 못 벌어준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내 삶의 흔적을 결과물로 남기고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을 무언가로 남겨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어쩌면 나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위로라도 받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모든 생각과 감정이 정리된, 누군가의 X가 되어 책을 통해 정서를 공유하고 싶었다.


퇴사 절차는 일사천리였다. 마음을 먹은 후 일주일간의 고민 시간을 가졌다. 장담컨대 정말 단 한 순간도 흔들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잘 쓰고 싶었고 하늘이 주신 이 기회를 어떻게 하면 잘 살려볼까만 고민했다. 선배 기자와 술자리를 통해 퇴사 의사를 밝힌 후 며칠 뒤 국장님께 찾아가 정중하게 퇴사를 요청했다. 특별한 핑계는 대지 않았다. 내 글을 쓰기 위해 퇴사를 한다고 했고 마침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앞으로 뭐하면서 커리어를 쌓을 거냐는 말에는 만족스런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랬다. 선택의 순간, 미래보다는 현재 처한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내리려 노력하는 것 같다. 미래의 내가 무엇을 할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확실한 건 지금 이 기회에 이 책을 쓰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영영 해당 경험을 주제로 글을 쓸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설령 주어진다 해도 당시의 감정을 온전히 살려 쓸 자신이 없다. 충만할 때, 예민한 감성을 가질 때 써야지 가장 나다운 글을 쓸 수 있다. 아래의 글은 퇴사를 일주일 남기고 썼던 일기다.




글을 쓰기에 앞서 먼저 지난 11월에 작성했던 ‘가족이 읽었으면 하는 글’을 다시 읽었다. 퇴사와 관련해 가족과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큰 상처도 받아보며 보란 듯이 결과물로 만들어내겠다는 다짐도 수차례 했다. 그래도 살면서 다행히 꼭 했어야 했던 일들은 잘 실천해나갔다. 그 다음 달인 12월에 나는 기자로 취업에 성공해 또 한 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당시 원고로만 존재했던 글은 ‘생각대로 산다’라는 에세이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 내 집을 마련해 엄마에게 남은 빚을 전부 나에게로 돌려놨다. 같이 갚아나갔던 아파트대출금도 이젠 온전히 내가 갖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것저것 떼고 나면 나에게 주어진 빚이 생각보다 크다. 처음에는 엄마와 같이 갚아보려 해봤지만 ‘코로나’라는 변수에서 미래에 대한 계획이 도무지 합리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엄마의 나이도 감안해야 되고 차라리 엄마가 버는 돈은 엄마가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놔두는 것이 훨씬 좋아보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구속을 받을 바에야 무리하더라도 내가 책임지는 것이 훨씬 더 도리에 맞는 결정 같아 보였다. 빚을 전부 안는 대신 거기에 맞는 자유도 같이 가져온 것이다. 그런 다음 내가 곧바로 한 결정은... 퇴사다.


퇴사와 관련한 어떠한 이야기도 가족과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뭐 어차피 나중에는 알게 될 이야기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 생각이 전혀 없다. 그냥 내가 결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 그만이다. 좋은 제안으로 책을 낼 수 있는 기회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 역시도 공유하지 않고 있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그냥 열심히 살고 결과물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할 계획인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가족과 이야기할 일이 없을 것 같다.


다시 불안에 내던져진 삶이기에 잔소리를 굳이 주워 담으며 인생을 설계할 자신이 없다. 모른 척 할 수 있는 건 모른 척 넘어가고 감출 수 있는 것은 그냥 꽁꽁 숨겨둬야 한다. 결국엔 다 내가 잘 풀리면 해결될 일들이다. 이제 다시 제도권 밖으로 나온 이상 어떻게 하면 잘 될 수 있을까만을 고민해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퇴사의 가장 큰 계기는 스트레스다. 8개월 만에 체중은 10kg 이상 불어났고 나 역시 취재에 대한 압박을 결국은 이겨내지 못했다. 마감전날, 기사를 쓰기 위해 조여지는 압박감은 정말이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데... 정말 솔직한 이유를 꼽아보자면... 글쎄, 사실은 동기부여 상실이 가장 맞는 표현이 아닐까한다. 무조건 또는 반드시 버텨야만 하는 이유가 사라졌다.


7월까지는 대출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몇 시까지 야근을 하던, 아무리 취재압박이 조여와도 무작정 버텨야만 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그럴 이유가 사라졌다. (쌓이게 되면 받게 될) 내일채움공제와 퇴직금을 포기하는 것이 아쉽긴 한데 그것이 버티는 유인까지는 작용하지 못한 것 같다. 결국 책을 같이 기획해보자는 제안이 내가 가진 꿈을 다시 자극시켰던 것 같다.


퇴사까지 이제 일주일 남았다. 어떤 인생을 살지는 나도 정말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실패할 용기를 가지고 다시 한번 도전해도 괜찮은 타이밍일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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