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요리까지

by Aroana

어쩌다 정말 요리까지 손을 대고 있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배운 어쩔 수 없는 활동이지만 뭐 나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식도락이라고 하지 않던가. 생활비 좀 아껴보겠다고 시작한 요리가 어느덧 기가 막힌 안줏거리로 재탄생돼 내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원래 나는 요리하고는 전혀 별개의 사람이었다. 호주에 가서도 밥을 하지 못해 라면만 연속으로 3개월을 먹은 적이 있었고, 삶은 스파게티 면을 차가운 소스에 그냥 부어먹은 적도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계란국을 끓이기 위해 냄비에 물을 올리고 다시다를 놓고 계란을 풀어 계란탕이 되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커피포트 사건. 커피포트기를 주전자로 인식해 가스레인지에 커피포트기를 올려놔 우리 집을 불태울 뻔한 적도 있다. 이쯤 되면 요리계의 빌런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그만큼 나는 요리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내가 요리에 눈을 뜬 것은 캐주얼 바에서 기본적인 안주를 직접 만들었을 때였다. 그때 에어 프라이어의 사용법을 접했고 샐러드를 만들어 보면서 칼질이라는 것도 처음 배웠다. 치킨, 소시지, 포테이토 등 모두 기본적인 음식이었지만 데코(레이션)를 통해 그럴싸하게 손님에게 건네지는 것을 보면서 음식은 곧 ‘분위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30대를 위한 가게였으니 거기서 얻은 인상이 내게는 강렬했다. 어쩌면 그게 지금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잠깐 경험만 맛봤을 뿐 요리하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해본 것이라곤 냉동식품을 기름에 튀긴 요리가 전부였다. 어쩌다 시도해 본 김치찌개에서는 고기 잡내가 느껴졌고 어설프게 했던 수육은 생각보다 질겨 영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엄마 생일날,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스파게티와 스테이크를 해드려 감동을 시킨 적도 있었다. 그러나 딱 그날 뿐 이었다. 다음날 나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엄마에게 해달라고 말하는 평범한 아들이었다. 내가 개수대 앞을 지키게 된 계기는 엄마와 모종의 거래고 있고 난 이후부터였다.


“대익아, 그냥 엄마가 생활비를 얼마 줄게. 네가 관리할래?”


“생활비를 준다고? 그럼 내가 밥 맨날 차려주지. 식비만 좀 보태주면 내가 앞으로 음식 할게!”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이 말 한마디에 나는 지금껏 요리를 하고 있다. 나 때문에 생활비가 많이 나오는 엄마가 던진 묘책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걸 덥석 받아들이고 말았다. 덕분에 엄마는 음식에서 해방되었고 나는 이 식비에서 어떻게든 내 돈을 안태우기 위해 치열하게 아껴가며 장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는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일과도 나름 일맥상통한다. 마트에서 일 하면서 매일 그날 들어오는 채소·과일의 가격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장을 보는 것도 내가 일하는 곳에서 보면 되니 나름 일석이조다. 그렇게 시작한 요리에서 우리는 한동안 된장찌개와 청국장을 참 많이 먹었다. 된장찌개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청국장은 집에 그게 많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원래는 둘 다 별로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었는데 내가 생활비를 관리한다고 하니까, 갑자기 그게 왜 그렇게 맛있어 보였는지... 고기반찬을 좋아하는 나였는데 정말 한동안은 고기반찬을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았다. 그 좋아하던 김치찌개도 갑자기 뚝 끊었고 무조건 한가득은 끓일 수 있는 찌개류로 요리를 해나갔다.


이후 점차적으로 나는 좋아하는데, 엄마가 잘 해주지 않았던 음식 위주로 많이 먹었다. 대표적인 게 바로 부대찌개. 처음 내가 끓였을 때의 부대찌개 맛을 잊지 못한다. 라면사리에 치즈를 넣으면 나오게 되는 그 무적의 맛은 엄마도 먹고 감탄했을 정도다. 생활비를 아끼고 싶으면 집에 있는 냉장고를 털어 볶음밥을 해 먹었고 찌개는 서너 가지를 돌려 먹으니 별로 질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안주 도장 깨기를 진행했다. 수육, 족발, 김치찜, 뼈다귀감자탕까지... 내가 최고로 꼽는 술안주들을 직접 해 먹으니 정말 맛이 기가 막혔다. 덕분에 술 한 잔의 즐거움도 나날이 깊어졌다.


요리를 하면서 얻은 삶의 교훈이 있다. 무조건 내가 한 게 제일 맛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나는 내가 요리한 음식이 제일 맛있다. 볶음밥이 됐든, 찌개가 됐든, 고기를 꿔도 내가 한 게 제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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