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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진 Apr 02. 2023

첫 마라톤 도전기 :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생 첫 마라톤 10km, 나도 해낼 수 있다.

달리기를 언제부터 시작했던 걸까, 생각의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작년 10월 때쯤이었던 것 같다.

아마 그즈음에 이별의 시기였고 나 자신의 몹쓸 감정들이 머릿속에 뒤엉키는 게 싫어서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예상치 못한 작별에 맞닥뜨렸을 때 좌절스럽고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승화시켜 무언가 내가 몰두할 수 있는 것에 원동력으로 삼는 편이다.

그 맘 때쯤엔 잠이 일찍 깨기도 하고 가을의 낙엽이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고 벌거벗은 나무의 가지들은 아니지만 앙상해져 가던 모습들이 기억 언저리에 남아있다.


그때 내가 스스로 끌어올리고자 한 건 다름 아닌 '런닝'이었다.

그것도 새벽 런닝.


1년도 남짓 안 되는 기간이지만 그래도 꽤나 시간이 흘렀고 그때 내 옷차림이 어땠는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남색 아디다스 바람막이에 신발장 어디선가 구석에 굴러다니던 검정 아식스 운동화.

런닝화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뛸 때 내 발을 온전히 지탱하던 푹신한 착화감이 느껴졌었던 걸로 기억한다.


새벽 5시. 바람막이 지퍼를 한 껏 목 끝까지 올린 뒤에 집 주변 5분 거리에 있는 팔거천으로 무작정 나갔다.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찬 공기가 살을 에워싸는 게 느껴졌고 손 끝이 금방 차가워졌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새벽에 둘러본 팔거천은 내가 낮에 항상 거닐었던 다리 밑 팔거천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주변은 깜깜했고 고요했으며 저 멀리서 이따금씩 경량패딩을 입고 지나가는 주민 한 두 분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다.


깔았던 나이키 런 클럽 앱을 켜고 일단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런닝할 때 듣는 음악'이라고 검색하여 '노래 부심주의, 유산소는 음악 빨'이라는 리스트를 틀어놓고 노이즈 캔슬링까지 해서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불어오던 찬 바람은 미처 바람막이로 덮을 수 없던 나의 두 뺨과 바로 마주했다. 코 끝이 시려왔다.

처음 해보는 런닝이라 몇 키로부터 달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처음이니까 2km만 달려보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신기하게도 달릴 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내게 느껴졌던 건 요한 새벽 공기와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이었으며 턱 끝까지 차오르던 숨소리였다.

숨이 차 올라 땅 쪽으로 얼굴을 향한 채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두 눈을 떴을 때 땀 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춥지 않았고 또한 고요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무심결에 바라보았다. 도시의 밤하늘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별들이 내 머리 위로 반짝이고 있었다.


정말 좋았다.

내가 새벽에 런닝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보거나 느끼지 못했을 광경과 편안한 적막함. 내가 남긴 첫 기록이자 런닝의 첫걸음이다.



런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언가 대단하다거나 내가 뭔갈 이룬다거나 뚜렷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나 자신을 바꾸고 싶을 뿐이었고 생각 정리를 위한 작은 통로정도였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그렇게 2주 간 부지런히 아침이든 저녁이든 달렸고 내 삶은 점점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고 더 이상 달릴 필요가 없어짐을 느꼈다.

런닝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나 자신을 가꿀 수 있는 다른 부수적인 운동을 시작했고 런닝은 나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잊혀져갔다.


그러다 다시 런닝에 발돋움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건 4월 1일, 바로 어제였다.


무엇보다 생생한 도전의 감정을 글로 옮기기 위하여 오늘 글을 적기로 결심하고 풀어내고 있는 중이다.

런닝이 기억 속에서 까마득해져 가던 시점에서 정확히 6개월 후, 다른 도전 항목을 우연하게 접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 나를 부지런히 채찍질하고 성장시키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지라 자기 계발 모임에 꾸준하게 참석하고 있었다.

어느 날 모임 단체 채팅방에 공지가 하나 올라왔다.

'경주벚꽃마라톤 원데이'를 모집하고 있었고 모임을 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좋은 취지로 뛰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아, 내가 런닝은 11월까지만 하고 그만뒀는데 과연 잘 달릴 수 있을까?'가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마라톤에 나갈 만큼 달리기 연습을 꾸준하게 한 것도 아니었고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라 잘할 수 있을지 의문 투성이었다.

도전했던 내 모습과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두려움과 궁금증이 공존했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생각으로 뇌 속이 지배당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너 자신에 한계를 두지 마'라고 신기하게도 스스로 다독이고 있었다.

이 한 마디는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연습시킨 말이고 나에게 어마무시한 원동력이 되는 말이다.

역시 연습시킨 보람이 있는 것 같다.


나에게 통했다.

갑자기 뭔가 모를 뭉클함이 맘 속으로 들끓었고 '도전'의 의미에 대해 되새기게 되었다.

이때의 나에게 도전이란 의미는 "내가 해보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의 뜻에 가까웠다.


그렇게 나의 마라톤 도전기는 시작되었다. 다시 내 인생에 달림의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번에 참여하게 된 경주벚꽃마라톤은 5km, 10km, 하프인 21.095km의 세 가지 선택지가 존재했다.

가볍게 난 이거! 하고 고를 수 있는 쉬운 선택지라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많이 고민스러웠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감당 가능한 턱이 어디까지일까, 혹여나 달리다가 다칠 수도 있다는 등 그 당시에 여러 가지 물음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던 것 같다.

나는 최대한 효율적이고 내 행복과 만족을 위해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결단력이 있지만 수치에 비례하지 않는 항목에 대해서는 시뮬레이션을 많이 돌린다.


경험에 비춰보는 바에 의하면 이럴 때 내가 후회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편이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어렵고 힘들었던 것, 헤쳐나가면서 앞이 보이지 않아 두려울 수 있는 것이 닥쳐왔을 때 내가 잘하던 못하던 후회하지 않는 걸 택했을 때 미련이 없었던 터.

이게 장점으로 작용한 건지 이왕 경주로 멀리 가서 뛰는 김에 5km 보단 10km를 뛰는 여자가 되어보자 하고 파이팅! 크게 외쳤다.


누군가 무모하다고 할 수 있으나 나는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깨고 싶었다.

나는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일까 나조차도 궁금해졌다.



마라톤 2주 전, 경주벚꽃마라톤에서 준비해 준 기능성 티셔츠와 번호표 그리고 무릎보호대, 자세한 안내나 설명이 적힌 리플릿과 책자가 집으로 도착했다.


나의 번호는 '31001'!

옛 시절 내가 키 순서대로, 생일 순으로 학교에서 받는 번호 그리고 휴대폰을 사면 내게 주어지는 번호 이런 것과는 사뭇 차원이 달랐다.

오직 나만을 위한, 끊임없이 너 자신을 인생의 런웨이에서 자유롭게 펼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짜 마라톤 선수가 된 것 마냥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 난생처음 받아보는 마라톤 번호표라 뭔가 기분이 이상했지만 괜스레 설레는 감정도 함께 일었다.


처음 느껴보는 희한한 자신감과 용기는 퇴근 후 나의 저녁 일상에 3km씩은 달리자라는 런닝 일정이 추가 되게 만들었다.

너무 욕심부리지도 말고 차근차근 서서히 해나가면 된다는 신조로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고 호흡법과 페이스에 집중했다.



작년 11월 이후로 다시 팔거천에서 3km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1km만 달려도 숨이 쉽게 차올랐다. 

1km에 다다르면서 이것밖에 못 달리는 사람인가, 벌써 숨 차 온다고? 말도 안 돼 라며 내 몸이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달리는 게 쉽지 않구나라며 괜히 10km에 도전한 걸까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은 포기할 수 없었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갈지언정 도착지에 깃발은 깊숙하게 꼽고. 스스로와의 약속도 포기할 수 없었고 포기란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기록을 달성하는 것에 있어서 조급하게 생각 말고 3km를 완주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것부터 작하기로 했다.

기록 달성에서 완주 달성으로 도전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 결과는 나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1km를 달림에 있어서 온몸이 물에 젖은 것처럼 무겁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었지만 잠시 쉬다가 다시 두 다리를 힘껏 뻗어 나가는 나였다.

우리 집에서 구암역-칠곡운암역-동천역-팔거역까지가 딱 3km 정도였고 칠곡운암역에서 숨이 차오를 때는 저기 동천역까지만 힘내서 달리자라며 휴대폰 기록에서 눈을 떼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무거운 욕심은 버려졌고 기분 좋은 평정심이 다가왔다.


일주일정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나를 믿고 온전히 달려간 것은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그다음 주에도 똑같은 거리로 달렸는데 1km를 같은 흙을 밟아도 이전만큼 숨이 차오르지 않았으며 주변의 잔잔한 물결까지 바라보며 달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때의 달리던 순간의 물의 흐름, 시원한 바람결이 그대로 느껴졌고 송골송골 맺히던 나의 땀마저 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달리면서 마음의 여유라는 것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소소한 다짐이었지만 나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큰 외침으로 나의 마라톤 도전기는 무르익고 있었다.



경주벚꽃마라톤대회 전날, J형인 나는 최대한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은 빠짐없이 준비했다. 준비성 하나는 1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나이키 런닝화는 기본으로 준비하고 내 손목에 채워질 워치, 전날이랑 대회날 먹을 아르기닌, 그리고 난 항상 아침을 먹는 사람이라 잡곡밥과 닭가슴살까지 챙겼다.

번호표와 마라톤 티셔츠는 물론이고.


제법 긴장이 되었다.


그동안 익숙한 팔거천에서 달리는 연습을 해 온 나지만 낯선 땅을 밟으며 감이 오지 않는 분위기에서 뛴다는 것이 과연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부푼 기대를 안고 컨디션 관리를 위해 잠을 청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이른 준비를 하고 힘을 내기 위해 아침까지 든든히 챙겨 먹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마라톤을 참여하려고 움직일 것이기 때문에 나도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아침 7시쯤에는 해리포터 영화를 보면 디멘터가 등장하는 씬의 장면만큼 날이 굉장히 흐리고 안개가 짙어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음산한 분위기에서 벚꽃 구경이라니 과연 괜찮을까 의문을 이따금씩 하긴 했지만 오로지 나의 관심은 '10km 완주'였다.

나만의 호흡법과 페이스를 연습해 왔으니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나에게 입력하 것이 더 중요했다.


경주의 아침 날씨는 생각보다 쌀쌀했다.

짐을 싸기 전 바람막이를 챙겨야 하나 고민을 했었으나 달리면서 땀나고 더워질 것 같아서 일부러 챙기지 않았다.

제공해 준 티셔츠는 반팔이어서 상체가 춥긴 했지만 조금 견디기로 했다. 이 정도 추위쯤이야 괜히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는 나였다.


달리기 전에 같이 달리기로 한 크루원들과 기합을 공유했다. 플러스로 파워젤팔라티노스라고 스포츠 영양제도 제공받았다.

반환점에서 먹으면 힘이 날 것이라고 했고 손에 꼭 쥐고 내가 꼭 완주하고 말리라 힘내기에 보태었다.


2023년 4월 1일, 오전 8시

경주벚꽃마라톤대회의 시작이 다가옴을 알렸다.

하프는 가장 긴 코스이므로 가장 앞 줄이었고 그 뒤로 10km, 다음으로 5km 순으로 줄이 정렬되었다.

전부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다들 각기 자신의 동료들과 열심히 달리자며 다짐을 나누고 있었다. 나 또한 크루원들과 다짐을 나눴다.

그리고 나 스스로와 다짐한 가장 큰 것은 '내 페이스대로 달려서 완주하자'가 핵심 포인트였다.

빨리 달려 나가는 사람들의 속도에 휘말리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의 힘을 내서 나아가는 것이 10km 코스 완주 성공의 길이라 생각했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10, 9, 8,...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카운트 다운 후 출발 대기선을 지나 시작 지점 통과 후 앞사람들이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이어폰을 끼고 익숙한 노래를 틀며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이곳, 이 순간, 바로 여기서 내가 마라톤 대회를 위해 달리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오묘했다. 복합적인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것 같다.

아직 완주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 나온 용기와 도전을 하며 활짝 웃고 있는 나 자신이 제 3자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저 사람 멋있다고 잠시 느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핑크색 티셔츠를 입고 함께 달리고 있는 것을 달리면서 지켜보니 무언가 모를 동질감이 다가왔다.

저 사람들도 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달리고 있을까? 어디가 자신의 목표일까 생각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나는 계속 달렸다.


달리는 속도가 느려질지 언정 쉬지는 않았다. 무리하지 않고 원래 달리던 속도보다 일부러 늦춰서 달렸다.

왜냐하면 나는 팔거천에서 달렸던 3km가 목표가 아닌 이번엔 실전인 10km 완주가 목표이기 때문이다. 과한 욕심은 금물이었다.

처음에 2km까지 달릴 때쯤까지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엄청 모여있어서 달리는 공간을 확보하기가 살짝 힘들었다.

하지만 나를 앞질러서 자신의 속도를 주체 못 하고 뛰어가던 사람들은 곧이어 쉽게 지쳐서 도로 옆 길에서 쉬고 있는 것이 보였고 걷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달릴 공간은 점차 확보되었다. 이 때도 나는 쉬지 않고 페이스대로 뛰고 있었다.


런닝 연습을 한 보람과 평정심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훈련의 효과가 있었는지 자신감을 갖고 달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경주월드를 지나 천군네거리에 다다를 때쯤 파란색 3km 안내 푯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놀라웠던 건 내가 평소에 힘겨워했던 3km 런닝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앞에서 달리는 사람들 덕분일까, 나의 자신감 덕분일까 무엇이 나의 힘의 원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 두 팔과 두 발은 힘차게 고지를 향해 뻗어나갔고 연습할 때보다 오히려 더 뛸만했다.

머리칼을 타고 흐르는 내 땀과 함께 따뜻한 행복감이 나를 감쌌다.


4km를 지나 5km 반환점이 다가오는 구간이 왔다.

나의 위기는 이때쯤 찾아온 것 같다. 숨이 점점 차올랐고 반환점 전 오르막길 덕에 다리를 뻗는 속도는 현저하게 느려져 있었다.

조금 쉬다 갈까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경주 와서 마라톤 대회를 참여하고 있는 만큼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느려도 계속 달렸다.


사람마다 달리다 보면 숨 차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다가오나 그 타이밍만 무사히 넘기면 다시 평정심을 유지하는 단계가 온다고 한다.

주변에 휘말리지 않고 나는 마음속에서 고요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런닝은 정신력 싸움이다. 곧 나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내가 무너지면 몸이 무거워지고 힘껏 휘젓던 내 팔과 다리는 멈추게 된다.

나는 끊임없이 정신력으로 나와 싸웠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반환점 뒤로 음수대가 나왔고 물을 건네주시는 아주머니들과 하이파이브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웃으며 손뼉 한 번 마주치는 게 기합을 다지는 게 내게는 정말 달릴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감사함을 깊게 느끼며 나는 한번 더 힘을 냈다.


또한 내가 힘을 낼 수 있던 것은 같이 달리던 옆 사람들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함께 달리는 타이밍이 같은 사람들은 내 옆에서 같이 달리고 있었다.

함께 달리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1~2km 달릴 때의 수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동질감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면 6~7km 달릴 때의 옆 사람들은 나에게 응원과도 같은 존재였다.


8~9km의 지점에 도달할 때쯤, 내 체력은 바닥나있었다.

흐르는 땀으로 내 머리카락은 젖어 있었고 등 뒤로 폭삭 젖은 느낌이 한 껏 느껴졌으며 목구멍은 갈증으로 헤매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달려왔나 싶을 정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뛰었던 것 같았다.

나는 한 번 더 대단한 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했고 남은 2km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뛸까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페이스대로 유지하여 멈추지 않고 달려왔으니 마지막 종점을 향해 스피드 업하여 힘껏 뛰어서 기록 단축에 힘써보기로 하였다.


그래, 해보는 거다.


그 순간 늘 달리던 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갔다.

지쳐있는 사람들 사이로 공간을 확보해 이전 속도보다 빠르게 뛰었고 있는 힘을 쥐어 짜내 온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내가 나아갈 방향만 생각했다.


이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새로운 전략이기도 하고 내가 예상한 속도와는 다르게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너만 돌아서 쭈욱 나아가기만 하면 도착 지점이었고 달리면서 고지가 점점 눈에 가까이 들어왔다.

아직 완주 지점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이상한 희열감 같은 게 온몸에서 느껴졌다.

숨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헉헉 소리를 내며 거친 숨 몰아쉬며 달렸다.


드디어 10km 완주지점.


"10km 들어옵니다!"라고 누군가 마이크로 외쳐주었다.

귀에서 그 말이 울려 퍼지며 나는 저절로 두 팔로 만세를 외쳤다.


난 해냈다.

정말 나에게 대단한 도전이었다.



경주벚꽃마라톤 10km 단축코스, 1시간 4분 완주 성공.

처음에 라톤을 시작할 수 있을까부터 생각하던 나였는데, 어떻게 빠르게 완주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나로 어느새 바뀌었다.

의문에 대한 고민은 전략에 대한 고민으로 거듭났다.


어느  날 마라톤을 뛰기 전 한 번은 지인이 말했다.


5km만 뛰어도 힘들다고 우리 괜찮겠냐고.

그 순간 나는 말했다.

10km를 나한테 맞추지 말고 내가 10km에 맞출 것이라고.


도전이 주는 힘은 위대하고 대단하다.


'도전'의 단어 자체가 주는 힘은 굉장히 거대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냐에 따라 '돋움'이 된다.

돋움의 시작은 곧 나의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시도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한다면 이런 값진 성과를 인생에서 얻을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이든 도전해 보라고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다음에는 새로운 도약인 하프코스에 도전하는 나로 성장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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