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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운 Mar 12. 2024

결혼의 치명적인 단점 한 가지

Good Luck!


결혼 전, 또는 아이를 낳기 전에 상대의 최악의 모습을 알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남편과 2년의 연애를 하면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아주 가끔 살짝 서운했다가 금방 조용히 풀었던 정도만 있지 서로 기분 상했다고, 기분 상하게 하는 표정과 말투로, 싸움답게 싸워본 적이 없었다. 결혼 후 싸움이 잦은 나에게 ‘그게(연애 시절 다퉈보지 않은 게) 문제였다’고들 하지만, 싸울 일이 없었는데 시비를 걸어서 싸워볼 수도 없고, 그땐 스무 살쯤으로 어렸던 데다, 사이좋게 지내는 게 마냥 좋은 건 줄 알았다. 싸우는 경험이 필요한 줄 몰랐다. 지나간 일이니 하는 수 없지만 말이다.



상대의 최고의 모습은 결혼 전에도 숱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모습도 미리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걸 미리 보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사람을 거를 수 있는 계기가 생겼을 때 ‘조상님이 도왔다’라는 말도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개인적으로, 결혼을 생각하는 커플들이 10년이든 20년이든 충분히 오래 만나보고 동거도 하는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이유로 결국 헤어지기도 하니 이건 정말 운이다. 원래 인생은 노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걸 다 이룰 수 없지 않은가. 노력하는 사람보다 운 좋은 사람이 ‘잘’ 사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가. 물론 노력을 해야 운이 작용할 기회도 생기는 것이지만,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아 어리다면 어린 생각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운은 정말 중요하다.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다 남편의 바닥을 보았다. 나의 브런치북 <어느 날, 남편의 휴대폰을 봤다>에 썼던 이야기뿐 아니라


https://brunch.co.kr/@4aceda3f0ce9481/3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우선,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남편의 최악을 볼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보려고 한다.



사귀는 사이에선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곳이 아마 직장일 것이다. 연애할 땐 일이 너무 힘들었던 날이면 데이트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에너지 쓸 일을 더 만들지 않으면 그만이었던 거다. 바로 집에 가서 각자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게임하고 싶으면 하고, TV를 보고 싶으면 보면 됐다. 하고 싶은 걸 하며 편하게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니 집은 쉼터가 아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도 집에서 다 빼앗겨버린다. 힘든 날도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휴식이 간절한데 할 일은 해야 된다. 미룰 수도 없다. 아기를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는 데 힘을 써야만 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버텨야 했다. 나를 신경 쓸 겨를도 없는데, 진작 고갈된 체력과 정신력이지만 아득바득 이성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는데, 상대가 본인도 힘들다며 죽을 상을 하고 앉아 나에게 배려를 바라고 있다면 서로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시한폭탄 같은 이 상황이 결국 터져 큰 싸움으로 번지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가시가 돋치고 눈빛에는 독이 서려 서로 쉽게 상처를 주게 된다. 그리고 그걸 막아낼 힘이 남지 않았기에 쉽게 상처를 입고 만다. 기분 좋게 말하는 화법이나 상대방의 수고를 알아주는 것쯤이야 평소엔 하나도 어렵지 않다. 정말 별 거 아니지만, 별 거 아닌 게 버거운 날도 어쩌다 있기 마련이라 문제다. 이걸 결혼 전에, 아이를 낳기 전에 겪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것도 문제다.



결론은, 뭔지 모를 최악의 모습이지만 감당할 수 있어야 결혼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최악인 상태일 때 상대방의 최악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부디 가능하면 아이를 낳기 전에, 아니 그보다는 가능하면 결혼을 하기 전에 상대의 바닥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말이 별 거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정말 운이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고 많이 질투하고 부러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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