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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운 Mar 15. 2024

젊은 엄마라서 슬플 때

‘애 보는 게 벼슬이냐’는 말도 들어봤다


진짜 과거 시험을 치르던 시대의 사람이나 했을 법한 ‘애 보는 게 벼슬이냐’는 위의 발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남편의 입에서 나왔다. 내가 돌보고 있던 아이는 자기 자식이기도 한데 아내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매우 기가찰 따름이다. 그때 내가 딱히 벼슬아치 행세를 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몇 문단 후에 계속...)



현재 난 20대 끝자락이고 첫째 아이는 내년이면 학교에 간다. 이는 내 또래보다 당연히 빠른 행보고, 아이 친구의 엄마들은 모두 확실히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주변 엄마들이 내 나이를 묻고 하나같이 놀라는 표정을 지을 때면 한국식 교육에 길들여진 나는 뭐라도 된 것 같은 그 기분을 이따금씩 즐기는 게 사실이다. 마치 나 홀로 진도가 빠른 것 같아서, 앞서 나가는 것 같이 느껴져서. 하지만 그건 아주 찰나고, 금세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애들 다 키우고도 40대면 한창때 아니냐, 친구 같은 엄마네 부럽다, 나중에 가면 네가 다 이긴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듣고 있는데, 정말 부러워서 좋은 의미로 한 말일테지만 어떤 형태든 내게는 위로로 다가온다. 힘들어서일까, 곧이곧대로 안 들린다. 지금 내 상황이 위로받을 상황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나중에 가면 이긴다’는 지금 내가 지고 있다는 거 아닌가. (음, 지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육아 진도만 빠르면 뭐 하나. 난 커리어가 없다. 전에 다니던 직장은 무거운 몸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아이가 생기면서 그만두었고, 지금까지도 내세울 만한 이력이 없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면 무슨 일을 하든 나이 많은 신입으로 시작해야 된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루빨리 워킹맘이 되고 싶은 조급한 마음도 있다. 남편도 예전부터 한결같이 맞벌이를 바라고 있어서 더 그렇다. 하지만 9시-4시(길어야 5, 6시) 등하원 시간을 맞추려면 오전 9시보다 늦게 출근하고 오후 4~6시보다 일찍 퇴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일찍 집에 가는 다른 아이들을 보고 기죽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아프다고 불시에 연락이라도 오면 즉시 퇴근할 수 있어야 하고 이후 등원하지 못하는 며칠간 더 휴가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까다로운 신입을 누가 환영할까 고민하며 매일 여러 구직 어플들을 전전한다. 사실 아이들이 아프거나 방학일 때 남편과 스케줄을 조율하면 어찌어찌 버텨질 것 같아서 7살인 첫째는 그나마 괜찮다. 가장 걱정이 앞서는 부분은, 이것저것 포기하며 냉큼 일을 시작하기엔 둘째가 3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거다. 지금은 애들이 어리니 당연히 일을 하기도 어렵고 돈도 안 모이는 때가 아니겠나, 이것도 다 지나갈 한때다 생각하다가도, 눈앞에 닥친 현실이 너무 커서 나중을 생각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갑자기 아이가 생겨 아이 중심으로 살다 보니 그랬다지만 너무 계획 없이 살았나 자책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회에서 내가 점점 지워지고 있다는 기분도 든다. ‘그 사람 언제부터 없었더라? 근데 없어도 될 거 같은데?’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브런치를 시작한 계기도 이것이었다. 오프라인에서라도 사람들 사이에 나를 끼워 넣고 싶었다. 나도 있다고 알리고 싶었다. 가끔 이런 내가 처량한 신세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보니, 커리어 탄탄하게 쌓고서 확신의 경력자, 실력자가 된 후에, 경제적 안정도 조금 다져졌을 때, 돌아갈 곳을 마련해 놓고, (그때의 나보다는 비교적) 느지막이 아이를 낳는 것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일찍 낳았더니 안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는데, 남편도 나만큼 젊었어서 그런지 아이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다행히 지금은 무척 달라진 모습이라 조금 안심되지만, 첫 아이의 영아기 시절 나는 매일 눈물바다로 지냈다. 아이도 아이지만 그 시절 고통의 9할은 남편에게서 받았다. 남편은 아이에게 좋은 영향만 고르고 골라서 주는 것보다, 가장이 되어 무거워진 어깨만을 신경 쓰는 것 같아 보였고, 그렇게 가장의 무게에 스트레스받으면서도, 항상 놀고 싶어 했다. 나가서는 친구들과 술 마시는 걸 좋아했고 집에서는 컴퓨터 게임 하는 걸 좋아했다. ‘벼슬’ 사건을 이어서 말하자면, 그땐 잠깐 맞벌이도 하고 있던 때였다. 첫째 아이는 돌이 좀 안 됐을 때였고 예민했다. 우리 부모님도 ‘아이를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많이 우는 아이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르셨다. 그날은 평소처럼 내가 아이를 재우고 있었을 때였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남편과 나는 싸운 상태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까지 심한 말을 할 수는 없었을 거다. (아마도.) 그 당시 우리 집은 거의 원룸에 가까웠던 구조라 침대와 컴퓨터가 한 공간에 있었다. 내가 아이를 재우는 동안 남편은 옆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말했다시피 예민한 편이라 잠도 쉽게 들지 않았고 자다가도 수시로 깨서 엄마를 찾거나 울기 일쑤였다. 거의 36개월이 다 되도록 수면습관 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아이를 겨우 재워놨더니 남편이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며 혼잣말하는 소리로 깨워버렸다. 아이가 깼으니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다. 조금 조용하더니 또 시끄럽게 해 아이를 깨웠다. 나는 또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이 “뭐만 하면 ‘조용히 해’야. 애 보는 게 벼슬이야?”라고 말했다. 그때 내가 게임하는 건 벼슬이냐고 한마디 했어야 하는데... 못 했던 거 같다, 말문이 막혔었나, 무슨 말을 했던가,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충격만 남아있다. 이 사건 말고도 남편은 키즈카페 가서 핸드폰만 보기, 아이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본인 기분 안 좋다고 버럭 화내기, 내가 출근하고 없던 날 4시에 하원시킨 후에 내가 돌아온 저녁 8시 반까지 아무것도 먹이지도, 씻기지도 않고 TV만 틀어주고 본인은 몸 안 좋다며 누워서 방치하기 등의 만행을 저지르며 학대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랬던 상황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면서 남편을 개과천선 시키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한 것 같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드는 생각은, 남자가 아이를 너무너무 간절하게 원했을 때, 불면 꺼질세라 쥐면 터질세라, 귀해서 어찌할 바를 모를 것 같은 사람일 때, 자식 없이 죽기는 싫은데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을 때, 그때 선물처럼 아이를 안겨줬어야 했나 싶다.



안다. 어딘가에는 젊지만 부성애 넘치고, 분노도 잘 참고, 놀자고 불러낼 친구가 없거나, 불러도 놀고 싶은 욕구를 잘 참는, 그런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젊어서 낳길 백번 잘했다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운이 없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젊은 엄마라서 좋을 때도 있다. 다른 어머님들이 내 나이를, 더 나아가 나를, 궁금해하신다. 나에게 궁금한 게 있다는 건 어떤 인간관계를 풀어나가든지 간에 장점인 것 같다. 출산 후 회복이 빠른 것도 장점 아니냐고 한다면, 나의 경우만 봐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이상한 건지 몰라도 몸조리 때도 무척 힘들었고, 여전히 몸이 안 좋은 상태다. 없던 생리통도 생기고 치질도 생기고 탈모도 심해지고 (별 얘기 다 한다.) 뼈든 근육이든 곳곳이 안 좋아진 게 느껴진다. 이럴 바에는 괜찮았던 몸으로 조금이라도 더 살다가 느지막이 낳아서 그때부터 안 좋은 몸으로 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럼, 젊은 몸으로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유달리 건강하고 똑똑하지 않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부부가 둘 다 마흔이 넘었을 때 아이를 낳은 지인이 있는데, 아이가 말도 빠르고 무척 건강하다. 그러니 부모의 신체 나이가 영향을 준다기 보다는 그냥 그런 아이인 것이라고 독립적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고, 스트레스 덜 받는 환경에서 키우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아무리 장점을 더 짜내보려 해도 한계다. 나의 평소 심정 그대로, 장점은 짧게 단점은 길게, 이렇게 마무리해야겠다.



일찍 낳든 늦게 낳든, 배우자가 좋든 싫든, 아이는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울 것이다. 여태 불평이 많긴 했지만, 나도 내 아이들 덕분에 지나온 날들의 후회는 접어둘 수 있을 것이고 나의 선택에 만족하며 앞으로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항상 운이 중요하다고 인생은 운이라고 노래를 불렀었는데 내 옆에 이렇게 큰 행운이, 그리고 행복이, 항상 나를 바라보고 있었구나. 글을 쓰며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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