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스 패치 시도
지금까지 쓴 글을 보니 총 13개다. 그런데 이 중에 남편에 관한 좋은 말이 한 마디도 없었다. 너무했나 싶어서 14번째 글은 (때론 안 맞고 상처 주고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제멋대로인 남편이지만 그래도) 남편이 있어서 좋은 점을 써보려고 한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그동안 몇 차례 적기도 했고, 결혼했다고 해서 모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니니, 이번에는 오로지 배우자에게 집중해 볼 생각이다.
7년의 결혼 생활로 느낀 최고의 장점은, 그 흔해 빠진 ‘안정감’이다. 성매매 이력이 있는 남편을 두고서 안정감 타령이라니, 언제 욱할지 모르는 남편의 불같은 성격에 불안해하면서 안정감을 장점이라고 잘도 꼽다니, 웃기는 소리긴 하다. 하지만 사이가 괜찮을 땐 이런 상황에 놓인 나조차도 안정감을 느끼고 있으니, 배우자를 잘만 만나면 얼마나 더 큰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까.
졸업을 하니 그렇게 친했던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퇴사를 하니 그렇게 친했던 동료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그땐 진짜 친했었는데... 참 재밌었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내가 인맥관리를 지지리도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예전 같은 관계를 이어가는 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지금 친하게 지내고 있는 동네 이웃들, 아이들 덕분에 친해진 주변 어머님들도, 분명 어느 한쪽이 이사를 가는 순간 지금처럼 친한 느낌은 서서히 사라져갈 것이다. 이렇게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을 여러 번 체감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원가족이든 새로 꾸린 가족이든 가족에게서 ‘안정감’을 많이 찾게 되나 보다.
한철 또는 길어야 몇 년 사는 꽃들이 널려있는 꽃밭에, 든든하게 서있는 나무 한 그루 같은 사람이 바로 배우자인 것 같다. 나도 그에게, 그도 나에게. 그 나무가 때로는 잎이 다 떨어져 그늘을 만들어주지 못할 때도 있고 가끔은 태풍을 만나 뿌리가 흔들려 기댈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쉽게 시들어버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유일하게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 내편일 때는 그 누구보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정서적 측면뿐 아니라 나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경제적 내편이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든든함에서 오는 안정감’은 사이가 좋을 때에만 해당하는 말이라, 태풍이 몰아치듯 싸우고 난 뒤에 등을 돌리면 이전까지 느끼던 든든함의 몇 배만큼이 외로움이 되어 돌아오곤 한다. 그런 시간들이 괴로워서 이별을 하고자 해도 강한 생명력을 가진 만큼 완전히 뿌리를 뽑아내기는 힘들다. 그래서 평생 같이 가야 될 수도 있는데, 내가 고른 녀석은 젊은 나이에도 매일 아프다고 골골대고 있어, 나이가 들어서는 매초마다 아프다고 골골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스트레스 관리도 해줘야 하고 눈치도 많이 봐야 하는 까다로운 녀석이지만, 그럼에도 저럼에도 내 선택으로 내가 심은 나의 나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소중하다.
나에게는,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누구와 갈지 고민할 필요 없게 해주는 ‘누군가’가 있고, 소중한 아이들에 관한 고민을 매일 함께해 줄 ‘누군가’가 있다. 퇴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사들고 와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누군가’가 있고, 내 취미생활을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누군가’가 있다. 지적 겸 부탁을 하는 나에게 화를 낼 때도 있지만 허허 웃으며 다음부터는 조심하겠다고 수용하는 ‘누군가’가 있고, 요즘엔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고 참으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끔씩이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내게 잠깐의 휴식 시간도 주려 하는 ‘누군가’가 있다. 내 생일을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겨주기도 하고, 내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 툭하면 이혼 생각을 하는 나와 달리, 아무리 싸운다 한들 자기가 먼저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 있다. 나의 사랑이 식은 걸 알고 있는 남편이지만, 오늘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고마운 남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