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즐겨 듣던 권학가

시조와 한시를 중심으로

by 올드 뉴요커

지난 시간에 주희의 권학가 우성을 생각했습니다.

그 시처럼 어려서부터 공부를 권하는 많은 글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이 시조였습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東方明否鸕鴣已鳴(동방명부로고이명) 동방이 밝았느냐? 노고지리가 이미 운다
飯牛兒胡爲眠在房(반우아호위면재방) 소 먹이는 아이는 어찌 방에서 잠만 자는고?
山外有田壟畝闊(산외유전롱무활) 산 너머에 있는 밭은 이랑이 넓고 넓은데
今猶不起何時耕(금유불기하시경) 지금도 아직 일어나지 않으니 언제 갈꼬?


숙종 때 좌의정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南九萬:1629~1711)은 이 시조를 이렇게 한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조의 작사자로 남구만을 꼽기도 하는 데 비슷한 시기에 많은 다른 한역이 있어 사실 이 시조의 저자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농촌에서 머슴을 두고 있는 주인이 농사일을 재촉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열심히 공부하라는 재촉으로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동네에서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하면서 목청높여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책 사이에 필통을 가운데 끼우고 보자기로 질끈 묶어 달거락 거리며 학교로 향했습니다. 겨울에는 추우면 대나무로 만든 동태에 책보자기를 끼워 한 명이 밀고 가면 나머지는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동태 참 편리한 이동수단이었습니다. 10 cm 내외 둥근 소나무를 잘라 바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대나무를 잘라 마디 밑에 구멍을 내고 대나무를 벌려 철사로 끼우면 완성이었습니다. 동네에서 이 동태를 밀고 다니며 놀았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놀기 좋아하는 우리에게 공부하라는 권고를 많이 들었는데 위의 시조가 사용되었습니다. 우성과 더불어 남아입지출향관으로 시작되는 한시도 권학가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석월성의 장동유제벽(將東遊題壁)

男兒立志出鄕關 (남아입지출향관) 사나이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났으면

學若不成死不還 (학약불성사불환) 학문을 이루지 못하면 죽어도 돌아가지 않으리.

埋骨何期墳墓地 (매골기기분묘지) 뼈 묻힐 땅이 어찌 조상의 선영 뿐이랴.

人間到處有靑山 (인간도처유청산) 인간이 가는 곳엔 푸른 산이 있느니라.


이 시의 작자는 ‘釋 月性’이라는 일본 막부시대 말에 살았던 진종(眞宗)의 스님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애를 먹인 아베 수상의 고향인 야마구치(山口) 현에서 태어나서 1856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야마구치 현의 유명한 항구가 하관 즉 시모노세키입니다. 출향관에서 관은 시모노세키를 말합니다. 관, 환 운을 맞추고 있기도 하지만 시모노세키는 명치유신을 주도한 조슈 번의 중심지입니다. 그런데 석월성은 정치에도 관여하고 명사들과 널리 교유했다고 합니다. 특히 존황양이(尊皇攘夷, 왕을 높이고 바다를 방비하자는 뜻)를 주장했다고 하니 오늘 날 일본 극우들의 조상 쯤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는 월성이 젊었을 때(1834년, 27세) 동유(東遊: 동쪽으로 유학함)해서 오사카(大版)에 가서 학문을 배우려 고향을 나설 때 벽에 쓴 글이라고 합니다.


일제의 유산인지 소시적 어른들에게서 많이 듣던 시였습니다. 이 시와 유사한 안중근 의사의 글이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에 나라를 판 이완용은 당대의 유명한 명필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도 명필이었지요. 그러나 이완용의 글을 알려지지 않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글만 전해져 오지요. 같은 명필이어도 평소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글의 가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男兒有志出洋外(남아유지출양외) 사나이 뜻을 품고 나라 밖으로 나왔다가
事不入謀難處身(사불입모난처신) 큰일을 못 이루니 처신하기가 어렵구나.
望須同胞誓流血(망수동포서유혈) 바라건대 동포들아 죽기를 맹세하고
莫作世間無義神(막작세간무의신) 세상에 의리 없는 귀신은 되지 말자.


같은 글이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려서 석월성의 글보다 안중근의 글을 알았다면 하고 아쉬워 합니다. 아마 일제 시대 교육받은 우리 조상은 안중근 보다는 석월성 시를 더 강요받았을 지 모릅니다.

어지러워지는 시대 안중근 의사와 이름 모를 시조작가가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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