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계엄 후 생각난 황우의 시

by 올드 뉴요커

우리는 오늘을 비추어 보고 내일을 예상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 특히 고전을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동양의 고전 사기를 읽어야 한다는 것은 요즘 시대의 대세입니다.

이는 동양의 시각이 차츰 중요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적 가치관이 서서히 영향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 한국 문화의 뿌리인 유교의 가치관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1994년, 아직 제가 미국에 머물 당시입니다. 한국에서는 도올 김용옥이 동양학에 대한 강의로 낙양의 지가가 아닌 서울의 지가를 높이던 당시입니다. 미국으로 전해진 뉴스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관유 전 싱가로르 총리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놓고 미국 정치·외교 전문 매체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서 설전(舌戰)을 벌였다는 사실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리관유는 싱가포르 초대 총리로 정적이나 범죄자에게 거액의 벌금을 물게 하여 제압했습니다. 폭력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지만 교묘한 방법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아버지적 권위로 싱가포를 통치했습니다. 물론 경제성장을 통해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통치를 서방에서 독재로 비난한 것에 대해 아시아적 가치를 강조하며 변호했습니다.

리 전 총리는 포린 어페어스 3~4월호에 '문화는 숙명이다(Culture is Destiny)'에서 미국을 향해 "외국의 제도가 적용될 수 없는 곳에 무차별적으로 강요하지 말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와 서구 유럽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서구 개념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아시아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죠. 유교가 중요한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한 것입니다. 어째 박정희식 통치가 생각나지요? 충과 효를 강조하며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려고 한 점이 기억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또는 아시아적 가치라고 강조한 점에서 두 독재자는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은 포린 어페어스 11~12월호에 '문화는 숙명인가(Is Culture Destiny?)'란 제목의 반박 글을 기고했습니다. 박정희와 대립한 김 전 대통령은 이 글에서 아시아의 문화가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뿌리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했죠. 김 전 대통령은 이 글에서 "맹자(孟子)는 왕이 폭정을 하면 국민은 하늘의 이름으로 봉기해 왕을 몰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의 민본정치 철학에 의하면 '민심이 천심(天心)이라고 했으며 '백성을 하늘로 여기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아시아에도 서구 못지않게 심오한 민주주의의 철학적 전통이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역시 노벨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죠.


이야기가 옆으로 샜습니다만, 어제 밤과 오늘 온 종일 윤석렬 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로 온통 술렁인 날이기도 했습니다. 10시 반 쯤 딸아이에게서 뜬금없는 문자가 왔습니다. 비상계엄에 대해 의견을 물어 왔습니다. 저는 상황을 파악 못하고 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영화 비상계엄(The Siege)이냐고 되물었습니다. 딸아이가 아니 우리나라 뉴스라고 하길레 부랴부랴 티비를 틀었습니다. 국회에 군인들이 진입하고 시민들이 막아서고 난장판이었죠. 오전 4시가 지나 대세가 꺽여 스스로 비상계엄해제를 선포하고 뒤로 물러 섰죠. 이 모습을 윤석열의 부인은 어떻게 받아 들였는 지 궁금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기에 전하는 한 시 두 편이 있습니다. 천하를 호령한 초패왕으로 알려진 황우의 시입니다. 천하를 놓고 유방과 겨루던 그는 전황이 기울어지자 처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여인 우미인을 향해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해하가(垓下歌)


力拔山兮氣蓋世 역발산혜기개세

時不利兮騅不逝 시불리혜추불서

騅不逝兮可奈何 추불서혜가내하

虞兮虞兮奈若何 우혜우혜내약하

힘으로는 산을 뽑을 수 있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한데

때가 불리하여, 추마가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우미인이여 우미인이여 그대를 어찌해야 하는가?


이 서글픈 현실에 우 미인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러 답을 합니다.


虞姬歌(우희가)


漢兵已略地 한병이약지
四方楚歌聲 사방초가성
大王意氣盡 대왕의기진
賤妾何聊生 천첩하료생


한나라 병사들이 이미 모든 땅을 차지하였고

사방에서 들리느니 초나라 노래뿐인데.

대왕의 뜻과 기운이 다하였으니

보잘 것 없는 제가 어찌 살기를 바라겠나이까.


전투에 패한 황우는 결국 자살로 한스런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나이 30이었습니다.

어제 오늘 행해지는 우리 나라 현대사에 갑자기 이 시가 생각나는 것은 왠일인 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 오늘 놀란 가슴 부여잡고 우미인을 보고 천하를 잡으려다 스소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 초패왕의 시를 다시 생각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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