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연구원 A는 수술대 위에 누워있다. 녹색 수술 복 밖으로 보이는 부은 발과 다리, 수술 모자 밖으로 삐져나온 기름진 머리, 쇄골 밑 중심 정맥관이 삽입된 모습은 그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친절히 설명해준다. G시는 수도권 한 귀퉁이에 있지만 첨단 산업들이 많이 모여 있어 잘 정돈된 전형적인 신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곳 안에서도 귀퉁이에 있는 중소규모의 G병원 수술실 안에는 의료진들 간의 가벼운 농담도 없이 적막한 가운데 연구원 A의 심박소리가 싸인파로 울려 퍼진다. 마취의는 연구원의 정맥관에 약을 주입하고 연구원 A의 초점 없는 눈이 감긴다. 기관 삽관을 시행 한 뒤 집도의는 환자의 복부 소독을 끝내고 스크럽 간호사와 함께 수술 포를 덮었고, 마취의는 연구원 A의 머리맡에 앉아 수기로 마취 기록지를 작성 중이다. 혈압 130/80, 심박수 분당 80회라고 마취 기록지에 체크했을 때 싸인파형이 내는 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클리셰로 쓰이는 시간장치 폭탄의 경고음처럼 “삐” 하는 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그리고 그 소리가 분당 140회가 되었을 무렵 마취과 의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수술실 안이 소란스럽다.
미래는 연구원 B와 함께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연구원 A를 바라봤다. 벤틸레이터에 맞춰서 규칙적으로 들썩이는 가슴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그 공간이 평온해 보였다. 규칙적이고 적당한 양의 일회호흡량으로 숨을 쉬는,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보이는 붕대와 각종 타액들과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줄들을 보면 급격하게 현실로 돌아온다. 삶의 탄생 근처에서 바로 죽음으로 건너뛴 셈이다. 벤틸레이터로 연결된 기관 삽관 장치는 기도에 직접 삽입되어있어 그것을 통해 기계환기를 하고 있다고 설명은 들었던 것 같지만 미래가 보기에는 그냥 커다란 빨대 같은 플라스틱 관을 입안에 물고 있는 것만 같아 보였다. 갑자기 눈을 뜨고 ‘퉤’하고 툭 뱉어버릴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올해로 30살의 나이가 된 미래는 중단발에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단단해 보이는 인상을 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수많은 인파 속에 있어도 섞여 들지 않고 뭔가 테두리가 뚜렷한 사람이었다. 돋보인다는 게 아니라 사람의 윤곽이 뚜렷해 다른 사람들과 확실히 구분이 된다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얼굴이 특징적이어서 한 번만 보아도 뇌리에 박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평범한 편에 속했다. 특이하게 멀리서도 미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사람들이 미래를 떠올릴 때면 얼굴이 아니라 전체적인 모습을 한 번에 떠올렸다.
동안도 노안도 아닌 그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사회적인 대화에서 나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상대방들은 미래의 나이를 정확하게 추측해 냈다. 미래의 입장에서도 “몇 살 같아 보여요?” “훨씬 더 어리게 봤는데 정말 동안이시네요!!” “그 정도는 아닌데, 호호호” 등의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미래는 벤처 기업 ‘플라이 어웨이’의 CSO(chief safety officer, 최고안전책임자)로서 회사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의 조사와 처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플라이 어웨이는 표면적으로는 벤처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어디서 그런 자금이 흘러 들어오는지 모르게 꽤 거대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흐릿해서 회사의 규모를 정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그런 회사에서 CSO로 있으며 그 간 있었던 일들 이래 봤자 노사 갈등이나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 악의적으로 올리는 회사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 같은 것들이 전부 었다.(조사 결과 그건 경쟁 업체인 ‘패스트 웨이’의 짓이었다. 그 유치한 녀석들에겐 법의 철퇴를 맛 보여줬다.) 이번의 경우처럼 누군가의 죽음 마주할 정도의 사건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보호자 되십니까?”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의사가 다가와 말했다. 적당히 신뢰가 가는 얼굴에 적당히 신뢰가 가는 목소리였다.
“네, 플라이 어웨이 CSO입니다.”
미래는 악수를 청했고 의사는 그의 손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CSO... 그.. 사고처리반 같은 건가요?”
“최고안전책임자입니다.”
사실 CSO라고 말했을 때 한 번에 최고안전책임자 혹은 Chief Safety Officer라고 바로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미래는 항상 자신을 CSO라고 소개했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알아듣는지를 관찰하는 취미 아닌 취미가 있었다.
1-2.
“정리하자면 이렇게 된 겁니다.”
미래는 플라이 어웨이 본사의 회의실에서 사건에 관해 발표를 하고 있다. 정육각형 모양의 회의실 가운데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원형의 테이블의 가장 안쪽부터 회장과 임원들이 앉아있었고 문 쪽에는 연구원 B가 마치 문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유리문을 등지고 앉아있다. 회장의 맞은편에는 미래가 서 있고 스크린 프로젝터에 이번 사건 개요가 적혀있다. 미래는 회장을 바라본다. 속을 알 수 없지만 겉은 멀끔한 전형적인 정치인 타입이었다. 정치인과 사기꾼은 한 끗 차이라고 했던가.
“그 회의실에는 말이야 탁자에 앉은 모두가 공평하다는 듯이 원탁을 쓰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살짝 카디오이드 모양인 거 알아? 그 약간 찌그러진 원에서 가장 안정적인 부분에 항상 회장이 앉는다는 말이지. 이게 곡률이 오묘해서 회장의 자리에 앉아보지 않고서는 어디서 봐도 완벽한 원처럼 보인다니까?”라고 말하고 회사를 나가버린 전임 CSO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그 연구원은 지금 패혈증에 빠져서 혼수상태란 말이죠?”
반쯤 정중한 말투로 회장이 말했다.
“네, 진단적 개복술을 하려 했지만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서 실행을 못했다고 했습니다.
회장은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의 모서리를 매만졌다. 완벽한 원형이 아닌 테이블을.
“아니 갑자기 왜 연구원이 혼수상태인 거야! 우리가 뭐 그, 바이러스 같은 거 만지는, 응? 그 생화학 실험하는데도 아닌데 말이야”
미래는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의사도 원인을 잘 모르겠다고 하는데 왜 나한테 물어보냐는, 그 퉁명스러운 표정을 감춘다고는 했지만 아마 티가 났을 것이다.
“그럼 다음 계획은?”
“일단 연구실을 다시 조사해 볼 계획입니다.”
플라이 어웨이 연구소가 설립되는 데는 집 값 상승이 큰 역할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자산 가격이 상승하며 집값이 오르던 때였다. 영국 런던에서는 비싼 주거비를 감당 못해 도시 근처 강의 보트 위에서 살고 있는 보트 피플이 나날이 증가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팔로알토에서는 IT기업에 다니는 고 연봉의 사람들조차도 컨테이너에 살아야 했다. 서울은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 수도권 광역 버스와 광역 전철 안에서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은 새롭고 획기적인 운송수단을 원했다. KTX과 같은 어설픈 수단으로는 수도권의 집중만 심화될 것이고 집값은 더 상승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플라이 어웨이는 순간 이동 장치를 개발하기로 한다. 바다가 보이는 정원이 딸린 전원주택에서 서울의 중심지로 바로 출퇴근을 할 수 있다면? 인구가 드물고 초록이 푸르른 산 중턱에 사는 사람도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뉴욕 한복판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집값은 확실히 잡히겠지.
* 순간 이동 장치
우리의 몸은 여러 종류의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물리적으로 실제 하는 신체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조차도 분자 단위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사람에겐 영혼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면-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은 두뇌 속 시냅스의 물리적 구조와 그곳을 오가는 전기, 화학적 신호의 결과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 전체의 분자 구조를 스캔할 수 있다면 일종의 인체 설계도를 얻을 수 있다. 증명사진을 찍듯이 그 순간 그 당시의 사람 자체를 통째로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말 그대로 분자 단위로 쪼개면서 스캔을 했다면 이제 그 뒤는 간단하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니까.
분자 단위로 쪼개져 더 이상 생명이라고 볼 수 없는 물질의 더미만 남긴 채, 스캔된 인체 설계도는 디지털 정보로 송신되고 수신기에서 재조립하면 전송과정이 끝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신체 정보가 빠르게 수신기로 이동해야 한다. 만약 오른쪽 다리를 프린트한 뒤 잠시 정체된다면 사실상 신체에서 오른쪽 다리를 잘라놓은 것과 같다. 프린트되는 순간부터 세포가 죽어나갈 것이다. 심장이나 뇌세포들을 더 말할 것도 없이 빠른 시간에 프린트를 하는 것이 요구되는데, 적어도 10분 안에는 사람 전체의 재조립이 끝이 나야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대략 60kg쯤 되는 성인 여성의 신체 분자 스캔 정보를 재조립이 가능한 시간 안에 다 보내려면 아무리 많은 수의 케이블을 병렬 연결해도 빛의 속도 이상의 전송 속도가 필요하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정보의 이동 속도는 빛의 속도를 넘을 수 없으므로 이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연구에 지쳐갈 때쯤 연구원 A가 구원자처럼 등장했다. 그는 양자역학을 사용하여 이런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 버렸다. 여러 개의 양자 큐빗을 중첩시켜 전송하는 방법으로 막대한 양의 정보를 한꺼번에 보내는 방법이었다.
스캔 과정에서 사람을 분자 단위로 쪼개는 것을 살인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수신기에서 재조립하는 것을 인간 복제라고 바라본다면 윤리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플라이 어웨이라는 회사는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는 어떤 거대한 존재가 되어 이런 일들을 능수능란하게 해결할 것이다.
1-3.
“그러니까 이게 그 기계라는 말이죠?”
미래는 플라이 어웨이의 연구실의 텔레포트의 전송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플라이 어웨이 연구동의 지하 3층에 있는 연구실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다. 보통 이런 연구실이라고 하면 방진복과 마스크를 쓴 사람이 마이크로 피펫을 이용해 실린더에서 비커로 시료를 옮겨 담는 풍경이 그려지기 마련인데, 이 연구실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실제로 펼쳐진 풍경은 각종 전자기기와 배선들이 널려있는 기계실 같은 공간이었다. 50m² 남짓한 공간에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테이블이 가운데 하나 있고, 책상 위 작은 파티션으로 나누어진 각각의 자리에는 데스크톱과 듀얼 모니터로 구성된 컴퓨터 세팅에 기다란 마우스 패드와 기계식 키보드가 놓여있었다. 컴퓨터를 켜면 당장이라도 복잡한 수식과 화학식이 화면에 뿌려질 것 같았다. 장시간 앉아 있기에 적격인 의자의 등받이에는 명찰이 달린 가운이 걸려있었다. 구겨진 모양으로 봐서는 입지 않고 의자에 걸어두기만 한 것 같았다. 연구실의 한쪽 면은 사람 한 명이 들어가 앉으면 꼭 맞을듯한 상자 두 개가 놓여있었다. 그 두 상자는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런 쪽에는 문외한인 미래가 봐도 전송 장치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 상자 윗부분에 매직으로 ‘송신부’, ‘수신부’라고 적어놨기 때문에. 그렇다. 이 기계 이름은 ‘송수신기’였다. 하여튼 과학자들의 작명 센스란..) 미래는 송신기 문의 손잡이를 매만졌다.
“네, 그쪽으로 들어가면 이 쪽으로 나옵니다.”
연구원 B는 수신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커다란 뿔테 안경을 코에 걸쳐 쓰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채 구겨진 셔츠를 호리호리한 몸에 걸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보니 뭔가 생각 나는 영화가 있네요. 혹시 ‘더 플라이’라고 알아요? 80년대 영화인데.”
“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당연히 알죠”
미래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상대방이 잘 모르는 걸 자기는 알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일종의 CSO로서의 전략이 이렇게 쉽게 깨질 줄을 몰랐다. 물론 능숙한 미래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수신기의 문을 열며 말했다.
“거기 보면 이런 텔레포트 기계가 나오잖아요. 이 연구는 어디까지 진행된 거죠?”
“동물 실험까지는 진행했죠”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연구원 B는 수신기 옆쪽 면에 붙여놓은 사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수신기 앞에서 연구원 A, B와 함께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는 유인원의 모습이 보였다. 꼬리가 없으니 원숭이는 아니고 아마 침팬지인 것 같다.
“이 침팬지가 여길?”
“네, 송수신 성공했죠. 그런데 말이죠 사실은..”
연구원 B가 작은 목소리로 몸을 낮추며 말했다. 자연스레 미래도 몸을 움츠리며 귀를 연구원 B 쪽으로 가져갔다. 그래! 역시 이런 연구실엔 비밀이 많은 법이지. 이 장면도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연구원은 이상할 정도로 주변을 둘러봤다. 누가 봐도 숨기는 게 있는 사람이었다. 주면에 누군가 있었다면 우리들에게 전혀 없던 관심도 불러일을 킬 만한 정도였다. 연구원은 침을 한번 삼키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에 미래 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그때 연구원 B는 갑자기 ‘윽’ 소리를 내며 배를 움켜쥐었다. 어라? 이 또한 영화에서 본듯한 장면이다. 미래는 영화 클리셰에 따라 주변을 둘러봤다. 중요한 비밀을 발설하기 바로 전에 어떤 연구원을 입막음을 하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라 생각했었는데, 이게 현실적인 설정이었나?
미래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연구원 B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서 한입에 털어 넣었다.
“아, 미안합니다. 위궤양 때문에 한 번씩 이래요. 미래씨도 말이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을 조심하세요. 이게 위궤양도 일으키고 나중에는 암도 생길 수 있거든요”
미래는 미동도 없이 고개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 무표정하게 연구원 B를 쳐다보고 있었다. 연구원 B는 통증이 가라앉자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음을 다시 확인하고 말했다.
“사실은.. 보노보예요”
“보노보?”
“네.”
연구원 B는 혼자만 알고 있는 커다란 비밀을 드디어 털어놓았다는 듯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 어쨌단 거죠? 이 침팬지 이름이에요?” 미래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서서 말했다.
“아니, 얘는 침팬지가 아니라 보노보예요. 현존하는 영장류 중에 가장 사람과 가까운 유인원이에요. 대략 250만 년 전에 침팬지에서 갈라져 나온 종이죠. 침팬지 정도만 해도 될 것 같은데 꼭 사람과 더 비슷한 보노보를 써야 한다고 이 친구가 너무 억지를 부려서 결국 여기 오게 됐죠.” 연구원 B는 연구원 A와 보노보를 가리키며 말했다.
미래는 기가 찬 표정을 짓는다.
“아니, 침팬지고 보노보고 그게 뭐가 중요해요!”
연구원 B는 다시 목소리를 낮추며 말한다.
“조용히 말하세요, 보노보는 멸종 위기종이거든요. 콩고 열대 우림에서 몰래 데리고 온 거예요. 얘를 데리고 오려고 어떻게 했는 줄 알아요? 콩고에 카사이 강이라고 있는데, 거기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말이죠…”
“아!! 그래요?!” 미래는 연구원 B의 장광설을 끊었다.
“그래서 그 보노보 까지는 성공했다는 말이죠?”
“네 그렇죠”
“보노보 개체 하나가 더 사라져서 그들의 멸종에 한발 더 다가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네요.”
미래는 수신기의 문을 세게 닫고 앞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그럼 인체 실험까지는 아직 못한 거네요?”
“그렇죠. 윤리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됐으니까요.”
“혹시 그 연구원이 몰래 자기가 직접 실험 대상이 되어 본건 아닐까요?”
연구원 B와 미래의 시선이 송신기에서 시작해 연결된 케이블을 따라가다 수신기에 다다른다.
“그 침팬지.. 아니 보노보까지 밀수입해서 이런 실험을 할 정도면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든 실험을 하고 싶어 할 사람 같은데..”
미래는 연구원 B의 가녀린 팔과 다리를 바라본다.
“ 그렇다고 누구를 납치할 근력이 되지도 않겠고.. 그럼 스스로가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죠”
“뭐 그 친구라면 직접 들어갔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겠네요”
미래는 연구원 A가 송신기에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옷까지 같이 전송되는 걸까? 아마 아니겠지? 그럼 옷을 다 벗고 저기 웅크리고 들어가겠지?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겠군.’ 그때 미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 영화처럼 말이죠”
“네? 아, 네.”
“송신기에 파리가 같이 들어가면 어떻게 되죠?”
* 더 플라이(The fly, 1986,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순간 이동 장치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자신의 몸을 직접 전송하는 실험을 하던 중 송신기에 끼어든 파리와 자신의 DNA가 합성되어 점차 거대한 파리 인간이 되어 간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원작 조르주 랑주란이 1956년 발표한 <La mouche>라는 소설이며, 1958년에 영화화가 한번 되었고 1986년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이 리메이크를 하였다. 1986년작에서는 사람이 점점 파리로 변해가는 과정을 매우 그로테스크하게 그렸다. 다들 아시다시피 파리는 이빨이 없고 관으로 된 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식을 죽처럼 만들어서 빨아먹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화효소가 들어간 타액을 음식에다 토한 뒤 그것이 곤죽이 되면 빨아먹는다. 거대한 파리로 변한 그 박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래는 연구원 A와 파리가 합성된 모습이 떠오르려고 하자 재빨리 고개를 내저으며 생각을 떨쳐냈다.
“그 영화에서 교훈을 얻었죠. 어떤 유기체의 연속성에 관한 거라고나 할까요. 그게 중요한 거였어요. 어디까지가 한 생명체의 범주인지를 정하는 게 중요하죠.”연구원 B가 말했다.
연구원 B는 책상에 놓인 머그컵을 집어든다.
“혹시 위상수학이라고 아시나요?”
“네? 위상수학?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거 같은데요”
“위상수학에서 볼 때 도넛과 이 머그컵은 같은 모양이거든요. 쉽게 설명하면... ”
*위상수학
연구원 B가 쉽게 설명하겠다며 말한 것을 미래가 알아들은 바로는 이렇다.
위상수학, topology는 어떤 물체를 찢거나 구멍을 내거나 접착해서 붙이지 않고 그저 구부리고, 늘리고, 수축해서 나타나는 형체를 연구하는 것이다. 만약 도넛과 머그컵이 둘 다 유연한 고무찰흙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도넛은 먹을 수 없고 머그컵은 손잡이를 들면 찌그러지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질료가 아니라 형상이다. 아닌가 형상이 아니라 질료인가. 어쨌든 중요한 건 기능이 아니라 모양이다. 고무찰흙으로 만든 머그컵을 잘 늘이고 구부리고 하면 도넛 모양을 만들 수 있다. 결국 도넛과 머그컵은 위상동형이다. 그런데 만약 손잡이가 없는 일반 컵이라면? 어떻게 해도 도넛처럼 만들 수 없다. 구멍을 뚫지 않고서는 말이다. 그래서 위상수학적으로 컵과 도넛은 모양이 다르다. 이런 특징을 지닌 위상수학을 이용하면 복잡한 물질의 연속성과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수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미래는 딱 이 정도만 알아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수학적인 연속성을 통해 사람과 파리를 구분할 수 있죠. 그리고 사람은 도넛과 이 머그컵과 위상 동형이에요”연구원 B가 머그컵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이거랑 사람이 같아요?”
“그렇죠. 입부터 항문까지 하나의 구멍이 뚫렸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미래는 연구원 B의 말을 하느라 벌어졌다 닫혔다 하는 입 속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예전에 봤던 B급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서양의 중세 시대가 배경이었는데 사람을 항문에서 입까지 하나의 긴 꼬챙이로 꿰뚫는 장면이었다.
“그럼 위상 수학적으로는 우리 위나 장 속은 외부 세계이니까 사람이 전송되고 나면 소화되다 남은 음식물은 바닥에 남겨지겠네요?”
“당연히 금식을 하고 기계에 들어가야겠죠?”
미래는 도통 이 연구원들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실에서 발을 살짝 떼고 있다고 해야 하나, 저렇게나 진지한 표정으로 허황되보이는 이야기를 늘어놓다니. 그때 연구원 B는 아직 통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듯 배를 문질렀다. 그 모습을 보고 미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 기계에 한 번 들어가 봐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은 전송 안 되고 송신기 바닥에 떨어지겠네요. 그럼 이제 위암 걱정도 안 하셔도 되고.”
“…. 아!” 연구원 B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급하게 송신기의 문을 열어본다. 그리고는 그 안의 냄새를 맡아보고 이리저리 뒤적거린다. 좁은 송신기의 바닥에 납작 엎드려 얼굴을 처박고 반면 한껏 추켜올린 엉덩이를 보고 있자니 미래는 아르키메데스가 떠올랐다. 유레카를 외치며 목욕탕에서 뛰어나갈 때 그는 왜 옷을 입을 생각을 못했을까. 갑자기 번뜩이는 영감에 대한 순수할 정도로 강한 열망과 그것에 완전히 빠져드는 집중력이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부러웠다. 어떤 면에서는 말이다.
연구원 B는 벌떡 일어나 송수신기와 연결된 pc를 열어 열심히 자판을 두드린다. 미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가 모니터를 같이 들여다본다. 화면상에는 미래가 전혀 알아먹을 수 없는 글자만 잔뜩 지나가지만 연구원 B의 태도로 미루어보건대 연구원 A의 상황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미래는 한발 물러서 잠자코 연구원 B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런 장면을 영화에서 본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