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었으면 써봐야지-5
오늘은 웹툰 <이발소 및 게임가게>를 보고 왔습니다. 고등학생부터 잠깐 도망쳤던 22살에서 23살까지의 몇 년을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임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컴퓨터가 가지고 싶었는데, 그 때의 기억을 괜히 꺼내봅니다.
어렸을 때, 또래 친구들보다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담배냄새나던 PC방은 부모님에게 들킬까봐 쉽게 가지 못했다.
그래도 가끔, 친구들의 생일이나 방학직전에 좋은 핑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용돈을 받아서 갈 수 있었다.
메이플스토리,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등등 넥슨의 온라인 게임들이 주를 이뤘던 우리 또래의 온라인게임 역사는 몇 년뒤 등장한 피파온라인과 LOL(리그오브레전드)이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축구는 좋아했지만, 손가락 움직임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엄청난 경우의 수와 수십개에 달하는 캐릭터의 특징들을 모두 알아야했다.
그냥, 친구들과 같이 논다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니었다. 참, 어렸을 때는 뭐든지 온전히 열심히 해본 게 없었다.
20살이 되기 전, 친구들보다 조금 이르게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로 인해 '내 돈'이 생기기 시작했다. 재수를 위한 학원비와 어느 정도의 식비를 제외하면 10만원 남짓의 돈이 남았었다. 그 해 11월이 되었을 때, 세 자릿수의 돈이 통장에 찍혔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줄 사람은 없었기에 스스로에게 주기로 했다.
어릴 적 부터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에 엄청난 신경을 쓰는 버릇은, 거금을 주고 컴퓨터를 사는 일에 꽤나 도움이 되었다. 오래 좋아했던 축구 팀의 팬카페와 각종 IT커뮤니티, 여러 블로그들을 뒤지며 조금의 자신감을 얻었다. 어느정도의 가격과 성능을 정하고 나서야 신이 나기 시작했다. 마침, 아프리카TV를 필두로 인터넷 방송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를 향하고 있었기에 온라인에서 어렵지 않게 컴퓨터를 구매할 수 있었다.
컴퓨터 본체만 생각해버렸던 게 기억난다.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의 존재를 깨닫고 예상치 못한 지출을 해버렸다. 엄청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없이 멍청해진 그 순간. 아직도 그 때 흘렀던 식은땀과 턱 막히던 숨을 잊지 못한다.
컴퓨터 배송이 오는 날, 컴퓨터를 모시기 위해 학원을 빠지고 하루 종일 방을 청소에 몰두했다. 지금도 어떤 물건을 주문하고 '택배상자'를 받을때마다 약간의 설렘이 있는데 그 때는 오죽했을까. 손수 마중나가서 택배를 받고, 박스를 뜯었다. 이 때를 대비해 PC방에서 열심히 파악했던 컴퓨터의 구조를 떠올리며 하나하나 연결했다. 둥글게 말아진 선을 펴고, 위치를 잡고 어떻게 놓으면 더 근사하게 보일까 연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경험들이 없었다면 스스로 뭔가를 해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겠지.
그렇게 집에 컴퓨터가 생겼다. 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했었던 게임들을 하나하나 해보며 그 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났지만, 집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혼자 하는 게임이 재미가 없었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내 편협한 사고방식과 자의식 과잉으로 인해 연락이 끊겼었다. 나름 재수를 한다고 약속도 피하고 연락도 두루뭉술하게 넘겼던 시간들이 쌓여 혼자가 되어버렸다.
네이버에 검색했다. '혼자 하는 게임' 그렇게, 세상에 게임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 이후로, 취미가 생겼고 아르바이트로 모아논 돈의 사용처가 늘어버렸다. '게임 구입비' 였다. 소위 말하는 명작 게임들부터 시작했고 밤을 새워가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시기가 한창 입시와 수능을 준비하던 시간이 아니었다는게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삶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듬해 2월이 되자 대학교에 갈 준비를 해야되었고, 공부를 드럽게 못한 탓에, 뛰어나지 못한 재능으로 인해 지방의 전문대 예술학과로 향했다.
조금 더 자유롭게 게임을 할 수 있는 자취방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컴퓨터를 가지고 올 생각은 학기초부터 시작된 무식한 수업량과 연습일정에 의해 사라져버렸다.
그때부터 몇 년간 내 취미는 술마시기로 바뀌었고, 삶의 가치관도 강제로 진화했다. 너무나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과 그에 따른 일들이 게임이 들어올 공간을, 조금의 여유를 가득히 채워버렸다.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마다 집을 오가는 일이 싫어졌다. 혼자 있는 방이 좋았다.
서울에 가면, 거기서 대학을 다니는 누구는 이미 뭘 했고, 어디에 나왔고, 그래서 그럴거고, 어쩌고 저쩌고 너무 너무 부러웠다. 매순간마다 열정을 핑계삼아 엄청난 자기비하와 혐오를 일삼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인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또한 거짓이었다. 잘하는 사람들이 싫어서, 무서워서 도망쳤다.
몇 년동안 밀려나있던 감정들이 물밀듯이 쏟아내렸고 동시에 방황이 시작되었다.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바뀐척 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뜨거웠다. 오만하고 거만한 바보같은 자의식에 눌려버렸다. 고개를 들기 어려웠고 숨쉬기 힘들었다.
여름방학이 끝날무렵, 2학기 등록을 포기했다. 도망쳤던 서울로 돌아왔다. 도망친 곳이 이전에 도망쳤던 곳이라니. 생사확인을 위해 오는 듯한 연락은 모두 끊어버렸다.
그 이후, 1~2년 지겹도록 게임에 빠졌다. 하루 한 끼 먹었을까? 그 때 게임이 없었다면 달랐을까?
보다 빨리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나갈 수 있었을까?
게임이 없었다면, 평생 패배자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의지할 곳은 그거 하나였으니까.
<이발소 밑 게임가게>에서 등장하는 오락실 게임기와 레트로 게임들. 보기만 해도 편안해지는 고양이. 그 고양이가 게임기 위에 자리를 잡고, 동전을 넣고, 게임의 특정 목표를 이루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다. 민준이는 그걸 알게 된 순간부터 이 악물고 게임을 해낸다. 도망치기만 했던 민준이와 효주는 게임을 통해 과거를 풀어내고 용서한다. 그들도 어렸기에 받아들이지 못했고, 이겨내기 위한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야 오래된 왜곡과 오해를 용서하고 고쳐나간다.
무기력했던 민준이가 게임기 앞에서 애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슬퍼졌다. 모든 선택과 행동이 나를 동하게 만들었다. 다시 멀어져버렸지만, 그 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안다.
1~2년 동안의 게임생활은 나에게, 외로웠고 어려웠지만 스스로 해냈던 19살의 기억과 생각을 되돌려주었다. 컴퓨터 구매부터 설치, 게임을 깰 수 있는 방법까지 어떻게든 찾아 냈던 그 때의 나를 만났었다.
<이발소 밑 게임가게>를 보고 있는, 이전과 조금 다른 내가 있었다. 감상적인 추억보다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도 나였고, 이것도 난데 부정하지 않기로. 덕분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며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