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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맴무 동거인 May 25. 2023

인간이 다른 종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종의 특징과 기원 등, 학습을 동반함을 말한다. 그 생명체는 햇살 아래 나른함을 즐길 수도 있고, 길쭉한 자태로 나무를 벅벅 긁을 수도 있다. 우리를 보면 꼬리를 높게 치켜들어 도도히 걸어올 수도 있고, 공간적 거리가 가까워지면 달려와 머리를 콩 박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고 “애-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심하면서 용맹한, 멍청하면서 약삭빠른, 묘하게 입체적인 작은 털뭉치를 가족으로 맞이할 수도 있다. 어쩌면 최초로 자발적으로 택한 가족 구성원이다. 여기서 그 개체에 관한 연구는 거시에서 미시로 넘어간다. 그 친구는 걸을 때 탁탁 소리가 날 수도 있고, 가끔 원동기 소리를 낼 수도 있다. 조용히 다가가는 것보단 호들갑 떨며 환대하는 것을 좋아하며, 귀찮으리만큼 치근 당함을 즐길 수도 있다 -심지어 잘 때까지도-. 우리는 논문과 서적에 기록된 바와는 조금 다른 연구 결과를 도출해내게 된다.



 보드라운 털뭉치가 우리 삶의 일부 또는 전부가 되었을 때 연구는 또다시 미시에서 거시로 넘어간다. 도심 속 닮은 개체들에 눈길이 가기 시작하고, 연이어 발생하는 너희 종에 대한 학대 소식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불이 났을 때 옆집 어린이 VS 내 고양이 어떤 것을 구할 것인가’ 같은 하찮은 질문에 너희를 알기 전과는 다른 답변을 내놓는다. 인간의 존엄성 등을 들먹이며 쿨하고 힙해 보이려고 애썼던 과거와는 다르게 말이다.



 언어도 습성도 역사도 다른 커다란 육지 해삼을 새벽에 멍하니 보고 있노라면, ‘우리도 언젠간 이별을 하게 되겠지’라 가끔 아주 가끔 떠올린다. 그럴 때마다 “우린 같이 순장되기로 한 거 알지? 껴묻거리 가는거야!”라 내뱉기도 하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DNA와는 상관없이 불멸을 꿈꿨던 진시황에게 공감하기도 한다. 메피스토가 다가와 “네 수명 절반을 준다면 저 친구의 수명 10년을 늘려주겠다.”고 한다면 꽤 나쁘지 않은 거래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과의 이별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감내해야 함이다. 인간과 평균 수명이 현저히 차이 나는 이 이기적인 개체들을 통해 사랑의 개념을 배웠기 때문이다. 선을 긋고 온전한 나를 지키며 사랑한다는 말은 모순적임을, 사랑은 노력보단 ‘어쩌다 보니’에 더 가깝다는 것을, 사랑은 흔한 유행가 가사에만 있는 미사여구가 아니라 실재함을 말이다.



 이들에게 배운 사랑의 재정의로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사랑은 우리와 같은 종일 수도, 너희와 같은 종일 수도, 또 다른 제3의 종일 수도 있다. 느닷없이 우리 삶에 끼어든, 예고편 없이 서로 삶을 공유하게 된, 너희가 준 선물이다.



 너는 여전히 젊고 밝고 빛나지만, 뜬금 없이 이별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이 또한 너희에게 학습 받은 사랑의 모습 중 하나인가 싶다. 인간사회에서는 건강할 때 수의를 입히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다. 역시 나는 무신론자지만 -이럴 때-는 선별적 유신론자이며 간헐적 유신론자이다. 이 소소한 글씨가 너와 나의 부적이 됐으면 좋겠다.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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