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지금 내 주변의 빛은 어떤 색으로 나를 감싸고 있는가?

by 전세화

부산항대교가 보이는 카페의 유리 통창 너머로
세월이 스민 가지각색의 집들이 빼곡히 자리한다.


하늘 끝에서 내려온 푸른빛이 지면에 닿으며
따스하고도 쓸쓸한 주황빛으로 번진다.
산의 머리를 스친 가느다란 구름이 경계가 되어
하늘의 푸르름과 땅의 온기가 서로의 색을 흐리며 뒤섞인다.


저 멀리 부산항대교, 그 아래를 오가는 배들.
반대편 항구에 켜켜이 쌓인 컨테이너들.
가장 뒤편, 산 앞을 높게 막아선 아파트들까지.
이 모든 풍경을 주황빛이 천천히 끌어안는다.


다시는 못 볼 듯, 점점 뜨겁게 이곳을 끌어안는다.
오래된 지붕들과 닳은 벽들까지,
주황빛이 천천히 끌어안는다.
그 뜨겁고도 쓸쓸한 주황빛이 건물 사이사이로 스며든다.


그리고는 미련도 없이 떠난다.
자신에게 주어진 짧디 짧은 순간을 붙잡듯
미련을 온몸에 묻히며 모두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남겨진 자리를 하늘빛이 천천히 채운다.


내게 닿은 온기를 잊기 전에.
흰 종이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형광등 불빛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좀 전까지 흐리던 손 그림자가
흰 종이 위에서 점점 또렷해진다.


한 개, 두 개, 세 개—어쩌면 네 개의 그림자가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몇몇 선박의 머리 위로 불빛들이 켜졌다.
햇빛은 빠르지만, 서두르지 않고
이곳에 어둠을 데려온다.


다시 종이로 시선을 향하면
펜을 쥔 손의 그림자가 더 선명해져 있다.
서둘러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방금 전보다 더 많은 불빛이 여기저기서 피어난다.


창밖의 풍경이 어둠의 형태를 갖추자
이 순간을 옮겨 담는 글자들에도
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면
떠나간 자연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불빛이 창밖을 가득 밝힌다.


조그만 둥근 빛에 의지해
조금 전의 풍경을 다시 떠올려 본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산들 앞으로
우뚝 선 아파트들의 불빛만이

이곳의 끝을 가만히 표시한다.


조금 전의 풍경이 서서히 지워져
아파트들 뒤로 끝없는 어둠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다.
작지만 강렬한 불빛들을 따라

잊힌 건물들의 형체를 조심스레 더듬어 그려본다.


제각각의 속도로 깜빡이는 불빛들.
겨울의 결을 묻혀온 바람에 가늘게 떨리는 불빛들.
언제 켜졌는지 모를,
형형색색으로 다리를 물들이는 불빛들.
수많은 불빛이 까만 하늘을 가득 채운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어둠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의 깊은 틈까지 비추던 노을보다
세상의 절반을 덮어버린 이 어둠이
더 편하고 익숙한 건 왜일까.


세상의 한 조각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던 과거보다,

보여도 보지 않으며 여백을 찾으려는 지금이

덜 쓸쓸한 건—닮아서일까.


더 채우려 할수록 비어가던 과거보다
덜어낼수록 온기로 가득해지는 지금.
평생 내가 품지 못했던 여백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2025.11.11.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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