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생각날 때
새벽 3시 14분이다. 수면안대를 벗고 본 자명종의 시간이 이렇지만 벌써 한참 동안 뒤척거린 걸 감안했을 때 분명 한 시간쯤 전에는 벌써 깼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밤 11시가 좀 넘어서 잠이 들었으니 오늘도 총 3시간 이상을 못 잤다는 뜻이다. 절망. 내 목표는 5시간을 자는 것이다.
나에게 불면증이란 마치 가문의 저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언제 내 차례가 와서 좀비처럼 될지는 몰랐지만 그것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빠는 평생 극심한 불면증을 앓았고, 들려오는 말로는 친가 쪽은 할머니를 포함한 모두가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난 덕분에 어릴 적부터 손잡이를 살살 돌려가며 문을 닫는 법, 아빠가 낮잠시에는 아빠의 골방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으며, 조근조근 말이 나오는 라디오의 역할은 아빠의 수면을 돕는 화이트 노이즈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동생과 내가 시끄럽게 떠들어서 아빠가 깨는 일이라도 생기면 극심하게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아빠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던 내가...
식욕이 왕성하고 잠이 많았던 고등학교시절에는 오는 잠을 떨쳐내느라고 애를 썼었다. 커피를 마셨고 다음날 시험이 있는 날이면 노도즈를 레드불이랑 함께 마시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대단히 열심히 공부한 거 같지만 사실상 친구들이랑 통화를 하면서 시험공부를 미루느라 밤을 지새웠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다. 엄마가 갈비구이를 하는 날이면 밥을 두 그릇도 뚝딱 먹던 시절. 어느 날 그런 나를 아빠가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이런 말을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눈 감으면 송장이고 밥상 앞에서는 범이네.” 아빠는, 단잠을 자고 입맛이 항상 돌았던 내가 부러웠구나. 이제야 그 느낌을 알겠다. 아빠는 결국 불면증, 그리고 분명 그 질병이 가져온 다른 질병 때문에 겨우 70 문턱에 돌아가셨지만 내가 그 가문의 저주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