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흔한기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은 Oct 22. 2024

무엇보다 네가 소중하다는 확인

"갑자기 웃긴 생각을 했어. 중학교에 들어가서 일진같은 애가 빵셔틀 시키고 괴롭히고 그러면 그냥 확 하기싫다고 들이받아버리고 전학가버리는 상상을 했어."


아이가 조용하던 오후 시간에 농담처럼 툭 말을 꺼냈다. 언뜻 평화로와 보였던 이 시간에 아이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고보니 중학교니 일진이니 하는 이야기를 요즘들어 종종 한것 같다.


요즘들어 아이가 예민해진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그냥 사춘기 인가보다 생각했었다. 유난히 환경변화를 싫어하던 아기. 여행도 싫어하고 이불도 베게도 낡아 헤질때까지 쓰던것만 쓰던 아이. 아빠에게도 낯을 가렸던 아이. 이제 많이 커서 그런 기질은 옅어져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건 엄마의 착각이었나보다. 아이의 기질은 사회화로 인해 많이 부드러워졌을뿐 아이의 내면에는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아이는 중학교 입학을 겨우 몇개월 앞두고 있다. 아이에게 중학교는 미지의 세계이고 무서운 소문이 들려오는 두려움의 공간인것 같다. 중학교도 초등학교와 별 차이 없을거라고, 막상 다니면 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말해줘도 아이에게는 큰 위안이 되지 않는것 같다. 아이에게 중학교는 이미 무서운 일진들이 있고 학교 공부로 압박하고 등수매기는 곳이 되었다. 아마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 유튜브등에서 얻은 정보일 것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고통이 아닌, 일어날것 같은 상상으로 인한 고통.

어쩌면 상상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가차없는 중학교라는 상상을 만들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몇시간이고 밑도끝도 없는 하소연을 나에게 쏟아내기도 하고 종종 짜증을 내며 벽을 발로 차기도 하고 학교에 가기 싫다거나 이유없이 우울하다며 하루에도 몇번씩 나에게 호출해왔다. 실체가 있으면 해결해주고 명확하게 공감해 줄수 있을텐데 실체없는 고통이니 이야기는 빙빙 돌고 아이의 고통은 그대로이니 나도 답답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문득 아이의 기질과 중학입학의 연관이 떠오르며 아이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고통은 내년 3월까지는 지속될것이다. 


"엄마 바쁘니 하소연은 네 친구에게 해."

"어디서 짜증이야!"

"우울할 이유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우울해 해."

라고 했다면 아이는 상상의 고통이 아닌 진짜 고통이 왔을때도 나에게 기대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는 극심한 고통을 혼자 겪어내다가 병이난 아이에게 '그렇게 힘들었다면 나에게 말하지 그랬어. 내가 신경 써줬을텐데. 나는 네가 별일이 아닌줄 알았어.' 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별일 아닌 사소한 고통을 호소할때 부모가 어떻게 대해주는지를 보며 부모의 반응 패턴을 학습한다. 엄마는 바쁘고 화를 받아줄수 없고 우울해 하는 나를 싫어한다는 것을. 그래서 정말 심각한 상황에서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다.


바로 오늘 

"엄마 나 학교가기가 너무 싫어." 했을 때

"무슨 일이 있니?" 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반응을 보여줄때

아이가 괴롭힘을 당해서 등교할수 없을 때도 도움을 줄수 있다.


머리로는 '학교가 아이 목숨보다 중요할수는 없지'라고 생각하면서

행동으로는 아이에게 학교는 무슨일이 있어도 가야해라고 보여주고 있다면

아이는 내 목숨이 학교졸업장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없다.


그래서 요즘은 끊임없이 아이는 그 무엇보다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있다.


엄마 내가 공부를 완전히 뒤쳐지면 어떨것 같아?

뭐 어때. 아르바이트 하면서 살면 되지.


엄마 내가 히키코모리가 되면 어떨것 같아?

네가 히키코모리가 되면 뭐 어때.  같이 게임이나 하고 애니나 보며 놀자.


엄마 내가 사고가 나서 팔다리가 많이 다치면 어떨것 같아?

네가 장애인이 된다면 나는 신나게 휠체어를 밀며 세계여행을 다닐거야.


엄마 내가 노숙자가 된다면 어떨것 같아?

그럼 우리 같이 여유롭게 공원 산책을 할수 있겠다. 별을 보며 공원에서 잘수도 있어!


엄마 내가 남에게 큰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면 어떨것 같아?

네가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간다면 나는 매일 면회를 갈거야. 사식도 잔뜩 넣어줄거야.


엄마 내가 죽고싶어지면 어떨것 같아? 나랑 같이 죽어줄거야?

우리 그럼 같이 죽자. 아니 그 전에 일단 전재산을 터키에서 탕진하자!

같이 죽기로 하고 둘이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아빠는 대신 죽어준다고 했단다. 바보같지만 너무 뭉클한 대답이다. 누가 대신 죽어준다고 죽고싶은 마음이 사라지는건 아니잖아? 그런데 아이는 그 대답이 아주 아주 마음에 든것 같다.


참 섬세하게도 큰다 싶은 내 아이다.

커서 뭐가 되려나 기대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