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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ul 08. 2022

프롤로그 - 영재반에서 게임중독자로

" 겨우 잡았네요! 주술사님도 너무 수고하셨어요."

파티원들이 서로를 칭찬하며 훈훈하게 전리품을 나누고 있다.  어려운 보스몹이었는데 간만에 멋지게 잡았다. 중간 중간 위기의 순간에 나의 활약을 다른 파티원들도 봤을까? 뿌듯한 마음에 인벤토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문득 새카맣던 창밖에 푸른빛으로 밝아오는 것을 알아챈다.


이 시간쯤 되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놀던 게임 유저들도 거의 다 로그아웃하고, 시끌벅쩍하던 게임 세상도 조용해진다. 일대일로 누가 더 쎈지 붙어보자며 호기롭게 외치던 전사도, '찢어진 초보자의 가죽바지' 같은 허름한 옷을 입고 앞마당에서 작은 몬스터를 사냥을 하고 있던 귀여운 초보 유저도 없다. 사고 파는 소리로 정신없던 채팅창에 아무 말도 올라오지 않는다. 어느새 나만 남았다. 게임세상조차 외로워지는 순간이다. 이제 잘 시간이다.


새벽 6시쯤 어스름하게 날이 밝아오면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는 쓰레기차 소리다. 후진할 때 삐뽀 삐뽀 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우리 아파트의 쓰레기를 가지고 간다. 이 소리가 들린다는건 곧 부모님이 깰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럼 나도 조용히 게임을 끄고 살금살금 침대로 들어가 방문을 등지고 눕는다. 그러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부모님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 부모님은 출근하시는 길에 종종 내 방문을 열어보곤 하셨다. 돌아누워 자는 척하고 있으면 문을 여는소리, 나지막한 한숨 소리, 다시 문을 닫는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무거운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중학생 때 전교 20등까지만 들어갈 수 있는 영재반에 뽑혀 따로 수업을 받을 정도로 학업성취가 뛰어나던 학생이었다. 영재반은 경시대회 준비를 위해 심화 문제를 풀고 선행학습을 하곤 했다. 고등학교 때는 수능 391점을 맞고 우리 학교 여자 이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우리 고등학교는 강제로 야간 자율학습을 시켰었다. 하지만 나는 야자를 하지 않았다. 선생님께 야자시간에 떠드는 애들 때문에 집중에 방해된다고 말씀드려 독서실에서 따로 공부할 수 있도록 특별 대우를 받은 탓이었다.


엄마는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셨다. 단돈 오백 원도 허투루 쓰지 않는 분이셨지만 딸내미 공부에 들어가는 돈이라면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좋은 성적을 받아오던 날 나를 얼싸안고 뱅글뱅글 돌려주며 함박웃음을 짓던 엄마의 행복한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반면 오답 체크를 하던 때의 엄마는 정말 무서웠다. 아는 문제를 실수로 틀렸을 때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다. 


엄마는 내가 한 문제 맞고 한 문제 틀리는 것에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 하셨다. 나는 공부를 잘해야만 했다. 그것이 엄마의 행복이었고, 따라서 내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길이었다.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아침도 안 먹고 등교할라치면 엄마는 내 꽁무니를 쫒아다니며 김밥을 싸서 입에 넣어줬다. 아침을 먹어야 머리가 깨어나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열성적으로 키운 딸내미가 어쩌다 대학 졸업후 취업도 못하고 게임만 하는 백수가 된것일까? 


부모님들은 자식이 공부만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들여보내면 자식 농사가 잘 마무리된 줄 안다. 반짝반짝한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의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이 결과를 보라!" 하면서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맨질 맨질 그럴듯해 보이니 그 속이 얼마나 문드러져 있는지는 모른다. 모른다기보다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굉장한 공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공허감의 뿌리는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다만 학창 시절에는 공부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었을 뿐이었다. 대학원을 선택하고 승진시험에 매달려 수십 년 미룰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구멍은 갈수록 커졌을 테고 결국을 맞닥드려야 했을 것이다. 


부모님이 보시기에는 몇 날 며칠 밤새워 게임만 하는 것이 문제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책상 밑에는 숨겨놓은 술병이 있었고 아파트 복도 소화전에는 몰래 숨어피던 담배가 있었다. 나를 위로하던 것들 중에 게임은 그나마 가장 무난한 것이었다.


그때 인터넷을 끊거나 컴퓨터를 박살내서 나를 게임도 못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한 다른 방법, 더 위험한 방법을 찾아 집 밖으로 뛰쳐나갔을지도 모른다.


당시 게임은 지옥 같은 삶에서 한줄기 숨통의 틔위주는 시간이었다. 함께 어울리던 파티원들은 나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해 줬고 늘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게임 속에서 나는 힐러였다. 누군가를 치유해주거나 죽은 유저를 살려주고 감사 인사를 받을 때면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나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여럿이 함께 힘을 모아 보스 몬스터를 쓰려트렸을때는 짜릿한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게임에서 나는 나에게 심각하게 결핍된 것들을 수혈받으며 나름대로 스스로를 돌보고 있었다. 그래서 게임하는 시간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백수로 한참을 미적거리다가 나는 게임회사에 취직했고 인생 2막이 시작됐다. 특히 선망하던 회사 '넥슨'에서 일하던 시간은 지금도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회는 게임이 문제라고 한다. 컴퓨터에서 해로운 뭔가가 방출되는 것 마냥 게임에서 독소가 뻗어 나오는 것 마냥 게임을 나쁜 것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나는 이 생각이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게임 중독에 빠져 현실을 살 수 없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문제는 게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문제가 있다. 게임으로 문제를 돌리는 것은 정작 그 사람의 아픔은 외면하는 것이다.


게임 중독에 빠진 자신의 아이를 보며 게임을 탓하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그 아이가 중독에 빠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 부모는 아이의 깊은 마음 속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의 마음에 관심이 없다면 아이는 얼마나 외롭고 두렵겠는가?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을까?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당장 게임을 못하게 한다고 해도 그 아이가 진정 내면이 건강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을까?


내 말이 너무 거칠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부모에게 어떻게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 될 것이다. 부모의 자랑거리에서 밤마다 게임만 하는 백수로, 다시 유명 게임회사의 게임 개발자에서 현재 내면아이 상담을 하고 있는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해드릴 생각이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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