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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해 May 08. 2023

기록하는 삶


한숨도 못 잔 하루였기에 나는 온전한 정신으로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피곤했지만 몽롱한 상태로 반주를 마치고 나의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카페에 있는 동안 나는 마치 며칠 말을 못 했던 사람이 폭포수를 쏟아내듯,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난 입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나왔다. 스스로도 누굴 향해 뱉는 말인지 조차 모를 정도로 쉬지 않고 움직였다.


‘말만 앞서는 사람이 되지 말자.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자.’라고 다짐하며 항상 말을 아끼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내보이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 탓일까? 밤을 꼬박 새운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절제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끝내 스스로를 혐오하며 급격하게 우울감에 빠졌다.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 강하게 기억에 스치는 생각은 유튜브에서 봤던 김민식 pd님의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서는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으로 태도를 꼽았다.


'태도는 인간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역량이 될 것입니다.‘
“상대 이야기를 ’잘 듣는 습관‘, ’잘 듣는 태도‘가 중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잘 듣는 태도는 요즘과 같은 인공지능이 도래한 시대에 인간에게 있어 마지막 남은 중요한 역량이라는데 나는 내가 갖고자 하는 태도를 갖추지 못한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스스로에게는 아직도 채찍을 마구 갈기는 나를 보며 ‘그냥 흘러가는 감정이야, 휘둘리지 마. 나의 일부도 인정하고 옳고 그름을 받아들이며 사랑으로 감싸주기로 했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전히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과정은 쉽지 않음을 느꼈다.




여느 때와 같이 많은 생각들을 스쳐 보내고 피곤한 몸으로 저녁까지 밖에서 보내다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년 시에서 하는 행사인 거리극축제의 마지막 날 저녁, 불꽃놀이로 인한 폭죽 터지는 소리로 인해 늘어져있던 신경들이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시끄러워서 짜증 났는데 언니랑 동생은 창문에서도 조금 보인다며 다 터지기 전에 잘 보이는 데로 가자고 김치전을 먹다 뛰쳐나갔고 귀찮아하던 나도 이내 뒤따라 갔다. 불꽃을 향해 달려가는 선선한 저녁 바람 속, 갑자기 마음이 일렁이며 설레고 즐거워졌다. 카메라를 켜고 터지는 불꽃을 연신 촬영하며 이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에도 사람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걸 다시금 느끼며 오늘 하루는 망쳤다는 생각은 금세 잊고 즐거워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듯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는 감정기복은 여전히 나를 휘두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금 현재,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싶고, 그 행위가 닿는 상대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의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는 것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임을. 그러기 위해 건강하고 올바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내보이는 연습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다.


매일의 기록이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갈지 모르지만 속도는 느리더라도 명확한 목표와 그것을 향한 열정과 꾸준함이 있다면, 그리고 여러 차례 실패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면, 결국 원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계속해서 써 내려가는 기록을 통해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뾰족하게 다듬고 나를 표현하며, 나는 누구고, 무엇으로 불리기를 원하며 과연 나 다운 것은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난 오늘도 기록을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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