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에 관하여.
옛날옛날에 한 임금님이 살았습니다. 그 임금님이 살던 시대는 너무나도 오래되어서, 그의 이름조차 후세의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임금님을 동정하기에, 그에게 조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조지는 허영심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마음속 구멍을, 끝없이 채우려고 했습니다. 보물을 모으고, 그걸 수도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이런 점만 빼면 조지는 전체적으로 훌륭한 임금님이었지만, 사람들은 조지의 이런 점을 경멸했습니다. 하지만 조지는 임금님이었기에, 그들은 조지를 함부로 경멸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나라의 임금, 법 그 자체이자 신과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그런 조지를 한 재단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나라에서 제일가는 사기꾼이었습니다. 동시에 멍청하고 불쌍한 조지 임금님을 비웃는 광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조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님. 당신께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옷을 만들어 드리지요."
조지는 그 제안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나라에서 제일가는 사기꾼이었으니까요. 그의 언변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사기를 당해 본 적 없는 순수한 임금님은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임금님의 마음속에 있는 거지의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위장을 자극했어요. 허영심이란, 그런 거잖아요?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죠.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 자는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는 옷을 만들어 줄 생각이 없었어요. 심지어 그는, 그냥 사기꾼이 아니었습니다. 최악의 사기꾼이었죠. 돈만 먹고 도망친다? 그건 최악의 사기꾼이 할 만한 일이 아니죠. 그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지에게 이렇게 속삭였어요.
"이 옷은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옷이랍니다."
이 말을 들어버린 조지에게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 옷을 입고, 그러니까 "벌거벗음"을 입고 군중 앞에 설 수밖에 없었죠. 그야 주변의 신하들도, "임금님! 너무나도 잘 어울리십니다!" 같은 소리를 지껄였으니까요. 임금님도 사람입니다. 모두가 착한 사람인데, 자신만 나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어떤 임금님의 이야기와 거의 같습니다. 하지만 조지는 그 임금님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그 임금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겠지만, 조지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역사가들에게 "절망의 퍼레이드"라고 불리는 그 행진이 끝난 이후, 조지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요. 그야, 민중의 반응을 보면 알 수밖에요. 그래요. 조지는 철저하게 속았습니다. 그 사기꾼은, 조지의 돈뿐만 아니라 명예를 짓밟으려 한 겁니다. 조지는 이제 영영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기억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지는 그만의 완벽한 전환을 해냅니다. 그는 그냥 이렇게 믿기로 했어요.
'이 옷은 정말로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옷이고, 그저 내가 착한 사람이 아닐 뿐이다. 그리고, 신하들과 민중들 중에도 착한 사람은 없던 것이다. 그들은 그저 이 옷을 보지 못했을 뿐, 옷이 실존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에 양자역학은 없었으니, "관측되지 않는 것은 없는 것과 같다."는 논리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임금님의 말이 곧 법이었으니, 모두가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죠. 망할 사기꾼은 이미 어디론가 도망친 뒤였기에, 그 누구도 이 생각의 진위여부를 따질 수 없었습니다. 모든 정황이 그가 사기를 당했고, 그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가리켰지만, 조지는 그런 아무래도 상관없는 진실 따위는 외면했습니다. 조지는 이제 어딜 가든 "벌거벗음"을 입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가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그의 신념에 의하면, 그들도 결국 착한 사람이 아닐 뿐이니까요.
조지가 진심으로 그런 믿음을 가졌는지, 아니면 멍청한 사람이 될 바에야 차라리 미친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은 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 조지가 되어보지는 못했으니까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데이터뿐이죠.
조지가 "벌거벗음"을 입고 다니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그의 나라는 건국 이래 최대의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허영심 많던 왕에게 목표가 생겼거든요. 그건 바로 스스로 자신의 옷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착한 왕"이 되는 것이었죠.
우선 그는 자신의 옷이 보인다고 거짓말을 한 신하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그것이 어떻게 보이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의 대답은 전부 달랐고, 조지는 그들을 자신의 곁에서 쫓아냈습니다. 이제 조지의 곁에는 진실을 말하는 자들만 남았죠. 물론 조지는 그들 역시 전부 의심했습니다. 그들은 "착한" 자들이 아니니까요. 후대의 역사학자들은, 이 선택이 나라의 부패지수를 엄청나게 낮추었다고 평가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 소유의 보물들을 모두 나라를 위해 사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재산을 백성들에게 뿌리는 게 아니라, 신하들의 의견을 종합해 나라의 성장을 유지하면서도 백성들에게 최대한의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 결과 대규모 토목공사가 이루어져 인프라가 확충되었고, 농학자들 및 공학자들은 풍부한 연구 자금 속에서 헤엄치며 나라의 장기적은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민중은 군주의 현명한 통치를 환영했고, 그들은 더 이상 조지를 "벌거벗은 임금님"같은 칭호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조지는 당시 기준으로는 꽤 오래 살았습니다. 그가 "벌거벗음"을 입고 다닌 지 정확히 30년이 되던 해에 정체불명의 열병으로 사망했어요. 조지의 유언은 딱 한 마디였어요.
"아아... 보이는구나!"
조지가 정말 무언가를 본 걸까요? 그럴 리가요. 착한 사람한테만 보이는 옷 같은 게 존재할 리 없잖아요. 학자들은 조지가 죽기 직전 환각을 보았다고 생각한답니다. 현실 세계에서 조지는 30년을 벌거벗고 살았지만, 그의 세계에서 그는 벌거벗지 못한 거겠죠. 스스로가 옷을 입고 있다는 망상 속에 빠져 30년을 달려온 우매한 현왕 조지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남아 있어요. 그가 없었다면, 우리가 세계를 평정한 강대국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아이러니하죠? "절망의 퍼레이드" 이후 조지는 전보다 훨씬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았어요. 비록 망상 속에서의 발버둥이었다고 해도, 조지의 발자국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깊게 새겨져 있답니다. 조지가 찾아낸 불씨는, 비록 망상이었지만, 조지의 삶을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과 같이 만들어 주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