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코끼리

by 이대희

나는 자동문을 통해 들어가지 않는다. 가까이 가면 무조건 열리는 자동문. 그 자동문은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한다. 손잡이를 잡고 손에 힘을 주어 여는 문이 좋다. 내가 나의 힘으로 조절이 가능한 문. 그 문으로 들어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아침 시간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위해 출근한다. 특수교육원도 오전 9시가 되면 모든 업무가 시작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유 연구사는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오면서 인사한다. 느닷없는 인사에 사무실에 있던 선생들도 기계적으로 인사말을 한다.

그러고는 유 연구사는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제 자신이 저렴하게 산 옷이 어때 보이는가를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손흥민 축구 경기를 새벽에 일어나서 봤는데 안 봤으면 큰일날 뻔했겠어.’라며 자기중심적인 대화를 한다.

듣는 이들은 그의 말에 호응한다.

“어디에서 사신 거예요?”

“저도 축구 보고 싶었는데 잠들었어요. 유 연구사님 대단하시네요'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동안에 한 쪽 구석에서는 ‘오늘 점심을 어떤 것으로 할까’라는 위대한 결정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은 헤비하지 않는 것으로 할까요?”

“샌드위치 같은 거”

“샌드위치는 먹고 나면 배가 고파서 좀 그런데...”

“매콤한 걸로 할까요?”

“내가 속이 안 좋아서.”

30분 동안 메뉴 결정을 하고 있다.

출근한 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점심 메뉴를 결정하기 위한 협의회가 열리고 그 협의회는 어떤 협의회보다 진지하고 엄중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빈 자리가 있다.

“안녕하세요!”

때마침 들어온 최 선생. 지각을 했는지 싶어서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지각이다. 아니 그런데 저렇게 당당하게 들어온다고!?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원래 이 구역에서 지각쯤은 관대하니까.

조용히 다시 문이 열린다. 모두의 건강을 위해 청결히 사무실을 관리해주시는 여사님이시다. 쓰레기통에 담긴 쓰레기를 분리배출하고 대걸레로 바닥을 닦기 시작한다. 제대로 닦이지 않는 곳은 발에 힘을 주어 박박 닦는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선생들의 부모님 연세이다. 그런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냉정하다. 대걸레로 책상 밑을 닦기 시작한다.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선생들. 누구를 위한 청소인가 각자의 자리를 정리해주시고 청소해주는 여사님은 자신을 위한 작업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떠난다. 마치 ‘내가 갔다 오면 청소를 마무리 해놓아요.’라는 뜻이 있는 것 같이.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감사합니다. 특수교육원 교사 김길동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상투적인 업무의 멘트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진다.

“직무마스터 일정이 변경된 공문을 발송하였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대학생활체험 관련 예산은 특교비에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이번 주 <아버지교실> 참여가 불가능하시다는 말씀이시죠. 알겠습니다.”

2미터도 안되는 작은 업무 세계에서 분주한 오전을 맞이하고 있다.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현재이다. 지금의 시간만이 존재할 뿐, 과거나 미래 따위는 함께 있을 수 없다. 늘 그렇듯 오후에는 고등학교 특수학급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장 실습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기업이나 개인에게 기증받은 물품을 깨끗하게 손질하여 다시 상품으로 판매하는 일을 하는 곳. 그곳은 ‘굿윌스토어’이며 우리 장애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하는 곳이다.

굿윌스토어에서 학생들을 만나 함께 세척, 포장, 트레이 접기 등을 진행한다. 학생들을 귀가 시키고 남은 시간 굿윌스토어 매장에 들어가 본다.

“어서 오세요. 굿윌스토어입니다.”

‘이곳은 식품을 파는 곳이네’라는 생각을 하며 기웃거린다.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어디 보자. 무엇을 살까?’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물건이 있다. 그건 바로 인형이다. 코끼리인데 하얀색이다. 흰 코끼리는 행운의 상징이라던데 돈을 주고 행운을 사볼까나.

“3,000원입니다.”

역시 저렴하다.

가방에 흰 코끼리를 넣고 다시 특수교육원으로 걸어간다. 특수교육원에 도착한 다음 의자에 앉아 밀려오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아차차 가방에 흰 코끼리가 있었지.’

가방에 담긴 코끼리를 꺼내고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아니 이럴 수가!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비틀어져서 보인다.

“젠장 왜 이래. 눈이 나빠졌나.”

혼자서 투덜거린다. 그러고는 옆을 돌아보게 된다.

유 연구사의 오늘 아침의 있었던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아침 출근 시간에 차 안에서 유 연구사는 라디오를 듣는다.

“8977님의 문자입니다. 직장에서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유 연구사는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라디오의 볼륨을 높인다.

“‘어떤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지,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라는 사연이 왔습니다. 여러분은 사람과 소통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잠시 노래 듣고 돌아오겠습니다. 자두가 부릅니다, 대화가 필요해.”

유 연구사는 혼잣말을 한다.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주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말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 그래 내가 먼저 말을 건네야겠어.”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출근길을 재촉한다.

말하고 싶어서 자기중심적인 언어에 충실한 유 연구사인줄 알았다. 다른 사람의 감정은 중요치 않고 오직 자신의 이야기만을 나불거리는 그런 사람으로 기억될 뻔했다. 놀라운 흰 코끼리가 아닌가!

순간 다른 이들의 과거와 미래가 궁금했다. 흰 코끼리를 들고 송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아침에 오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점심 메뉴를 상의하는 그들. 흰 코끼리와 함께 쳐다보니 이번에는 과거가 아니네. 송 선생과 성 선생의 장면이 흐릿흐릿 시작된다.

“점심을 빨리 먹고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봐, 송 선생.”

“어제 저녁 먹은 게 체했나 봐요. 속도 안 좋고 불편해요.”

“그래요, 어서 병원에 가봐요. 나도 일찍 먹고 직무마스터 수업 준비랑 일찍 온 학생들 관리할게요.”

그들이 매일 아침에 모여 점심 메뉴를 결정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오후 수업 준비와 평소 몸이 좋지 않은 선생의 건강 관리를 위해 아무거나 먹을 수 없었던 거였구나.

시간을 거슬러 과거에 갔다가 시간을 빠르게 흘려보내 미래로도 가는 흰 코끼리가 신기하다. 가만히 코끼리를 쓰다듬다가 떨어트리고 만다.

흰 코끼리를 줍고 옆을 돌아보니 최 선생이 있다. 최 선생.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길래 그런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과거로 조심스럽게 들어가본다.

두 꼬마가 울면서 말한다.

“싫어 싫어. 안 갈래, 집에 있을 거야.”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지금 어린이집 가서 간식 먹고 놀고 있어. 아빠가 빨리 돌아올게.”

“싫단 말이야. 집에 있을 거야. 엉엉.”

어린이집 앞에서 두 꼬마와 그들의 아빠가 아침 햇살을 맞으며 실랑이를 벌인다.

“자, 어서 들어가 보자.”

“아빠 미워!”

1분 1초가 아까운 아침 시간. 그 시간을 쩔쩔매며 보내고 있다. 누구보다도 무거운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한다. 그렇게 길고 긴 아침시간을 보내고 최 선생은 빠르게 특수교육원으로 향한다. 늘 죄인이다. 아이들에게도 직장에서도 그렇게 죄인으로 되어가는구나.

다시 지금의 나로 돌아왔다. 내 손에는 흰 코끼리가 있다.

3,000원 짜리 흰 코끼리가 3,000억의 가치를 준다. 아니 굿윌스토어에서는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은 가치를 팔고 있는 셈이다.

불현듯 여사님이 청소할 때 조용히 자리를 떠난 박 선생이 궁금해졌다. 흰 코끼리를 들고 살며시 쳐다본다. 어디 보자. 이곳은 어디지?

“후루루루~”

변기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화장실 문이 열리며 박 선생이 해맑은 미소로 나온다. 아하, 쾌변이구나. 여사님 청소 때문에 자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거사를 치르기 위해 화장실에 간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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