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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Jan 26. 2023

미선로 교동길에서 23

감자 캐기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장대비가 내리기 전에 감자를 캐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씨감자만 심어 넣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비료와 퇴비도 충분히 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물도 담뿍 뿌려줘야 하는데 제대로 못 한 것 같습니다.
 감자를 볼 때마다 미안했습니다.


 그런데도 감자는 저 스스로 무럭무럭 자라 이랑에서 삐져나온 줄기가 고랑까지 축 늘어져 있습니다. 다행히 지난 주말은 장마 소강기라서 햇볕이 짱짱하게 비추었습니다. 모든 작물이 그러하듯 햇볕과 비는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야 잘 자랍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햇볕과 비가 적당히 반복해야 정서적으로 좋겠지요.


 선선한 바람도 불고 하늘도 쾌청해 감자 캐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호미로 감자 줄기가 있는 이랑을 파헤치는데 알 굵은 감자가 땅속에서 지상으로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감자는 홀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주렁주렁 뭉쳐 있기도 합니다. 우리 부부는 무슨 노다지라도 캐는 양 신나게 수확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자의 노란 빛깔이 황금빛으로 느껴집니다. 배만큼 큰 감자를 캘 때마다 나는 아내에게 내 감자가 크다고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어설픈 남편을 챙깁니다. 

“여보! 이것 좀 봐요. 감자가 배보다 커요. 당신 감자는 너무 작은 거 아니아?”

“와~ 진짜 크네! 큰 감자가 좋은데, 메추리알처럼 작은 감자도 간장에 조려 먹으면 되니깐 버리지 마세요”     

아내 보기에 남편은 한평생 불안한 존재인가 봅니다. 모든 남편이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겠지요. 나는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처럼 얌전하게 순종합니다. 순종은 남편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자세입니다. 사실 아내는 목소리만 컸지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줍니다.


 감자 수확량이 제법 되었습니다. 둘이 들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두 박스 가득 담았습니다.
 감자는 햇볕을 받으면 변색이 된다고 합니다. 창고에 차양막을 깔고 그 위에 감자를 가지런히 펼쳐 놓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뿌듯했습니다. 진짜 농부가 된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집사람이 덕배 부부를 위하여 백숙을 준비했습니다. 지난번 예초기 조립을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번 주말은 모처럼 백숙에 술 한잔 나누기로 했지요.
 덕배는 2주 전에 데크 식탁을 만들어 주고 나서 아직 최종 완성이 된 건 아니라고 했는데 드디어 마무리를 짓겠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데크 천장에 조명을 다는 일입니다. 나는 형광등을 달아주는 걸로 생각했는데 백열 전구로 근사하게 설치했습니다. 한옥 창틀을 천장에 매달고 운치 있는 백열 전등을 달은 것입니다. 식탁이 앤티크 예술품으로 거듭 탄생했습니다. 데크가 카페처럼 변신했습니다.


 노오란 불빛 아래 준비한 백숙과 감자전을 식탁 위에 올리고 인덕션 화로에 백숙 죽을 올려놓으니 이만한 만찬이 흔치 않겠다 싶었습니다.
 우리는 문경 막걸리를 한 사발 가득 따르고 건배했습니다. 

“라온제나를 위하여! 나 언제나 즐거운 집을 위하여!”

언젠가 이야기했듯이 라온제나는 우리 집 당호입니다. ‘라온제나’를 ‘나 언제나’로 외치니 그 또한 그럴 듯 했습니다.

정담을 나누며 편안하게 취해갑니다. 좋은 벗이 찾아와 집을 예쁘게 만들어 줄 때마다 나는 괴산에 내려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양평이나 여주처럼 먼 곳으로 귀촌했으면 덕배를 이렇게 자주 만날 수 없겠지요. 덕배 집과 우리 집은 차로 40분 거리라 그리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일이 있을 때마다 자기 집 일처럼 달려와 주는 덕배가 고맙습니다. 귀촌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나 이웃이 있다는 것은 귀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겠지요. 지금이야 내가 덕배에게 해 주는 거라고는 덕배 아들 수학 공부 봐주는 정도이지만 조금씩 촌부가 되어가며 덕배네 일손 바쁠 때 함께 해 주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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