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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Jan 26. 2023

미선로 교동길에서 22

드디어 예초기를 사용하다

 
 드디어 예초기를 구매했습니다.
 ‘드디어’라는 단어를 쓴 까닭은 예초기를 구매한 것이 생애 최초로서 그만큼 감격적이라는 뜻입니다. 조상 산소에 가서 예초기를 사용한 적은 있지만 직접 내가 사서 사용한 건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나도 예초기 정도는 사용하는 농부가 된 것이지요.


 어느 날 농사 싸부가 밭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잡초 제거가 포탄이 날아가는 전쟁과 비슷하다니, 설마 했습니다. 나는 정신 수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뽑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잡초 뽑기는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비 한번 시원하게 내리고 햇볕 짱짱하게 비치면 잡초는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쑥쑥 자라납니다. 지난주에 분명히 뿌리까지 발본색원했는데, 어느새 잡초는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무성하게 자라있습니다. 특히 옥수수밭 고랑 사이의 잡초는 옥수수 키만큼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예초기를 구매한 결정적 이유입니다..
 
 언젠가 고백한 적이 있지만 나는 기계치입니다. 괴산에 와서 많이 나아졌지만 뭔가 조립하는 순간에는 영혼이 유체 이탈하는 현상을 겪습니다. 오늘 예초기 조립에 도전했습니다. 박스를 뜯어보니 본체와 작업 봉과 회전 칼날이 얌전하게 새 생명 탄생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예전에 몇 번 예초기를 사용했던 경험만 믿고 대충 조립하려고 했다가 아내에게 혼났습니다. 

“아니, 눈에 보이는대로 조립하면 어떻해요? 여기 매뉴얼 있으니까 단계별로 해야죠”

“오케이바리! 매뉴얼 이리 줘봐요”

매뉴얼을 들여다보았지만 글자도 작고, 설명도 압축파일처럼 되어있네요. 예초기 제작자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겠지만, 세상에는 예외가 있는 법입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겨우 예초기를 조립하긴 했는데 이게 작동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와이어 줄을 변속기에 제대로 고정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매뉴얼에는 깊숙이 찔러서 아래로 잡아당기라는데, 세상에 그런 무책임한 매뉴얼은 금시초문입니다.
 결국 덕배가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덕배라는 친구 잘 아시죠? 우리 집 식탁도 만들어주고 차양막도 쳐 준 친구이지요. 덕배에게 예초기 샀다고 자랑했더니, 축하한다는 말 대신 사용하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고 하네요.

“덕배야, 드디어 나도 예초기 장만했어. 이제 막 조립을 끝냈어. 시범 작동 해보려구”

“잠깐, 아직 사용하지 않았지? 기다려. 내가 갈 때까지 그대로 있어야 해!”

전화 통화가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왔습니다. 아마 덕배는 어떤 위험을 감지 했나봅니다.


 도착하자 덕배는 우리가 애써 결합한 것을 물어보지도 않고 분해했습니다. 역시 와이어 줄을 변속기에 연결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와이어 줄을 깊숙이 찔렀지만 변속기에 연결이 되지 않았군요. 덕배는 분해하고 나서 와이어 줄을 변속기에 끼워서 팽팽히 잡아당긴 다음, 다시 커버를 씌우네요. 보기에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아니 이런 고난도 작업을 분해도 하지 않고 쓱 끼워 넣으라는 매뉴얼에 화가 났습니다.
 그 과정에 조그만 판이 찌그러져 있어 피려고 했더니 덕배는 그 상태 그대로 끼워야 한다고 합니다. 

“아니야. 피면 안 돼. 찌그러져 있어야 완충작용을 하는 거라구”
 모든 부품의 형상에는 다 나름대로 그 이유가 있다는 종교적 설법까지 곁들였습니다.
 
 시동을 걸었더니 카앙~ 소리를 내며 회전 날이 힘차게 돌아갑니다. 나는 와우~ 감탄사를 날리는데 덕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다시 예초기를 분해했습니다. 나로서는 분해의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숨을 고르고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회전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 분해의 이유였습니다. 와이어 줄을 조정해 다시 조립했더니 저속은 저속답게 고속은 고속답게 회전을 합니다.
 자동차 운전에서 3단 기어를 넣고 고속으로 질주하면 안 되듯이 예초기 회전 속도도 변속 레버에 맞게 돌아가야 한다고 하네요. 상태는 저속 기어인데, 행동은 고속 질주하면 안 된다는 세상의 이치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자, 이제 예초기를 걸쳐 메고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시동을 걸고 회전 날이 돌아가는데 예초기를 어깨에 걸려고 하자 그럼 위험하다며 회전을 중지시켜 놓고 어깨에 건 다음 회전해야 한다고 덕배가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예초기를 사용했으니, 사고가 안 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나는 점심을 먹고 읍내에 가서 예초기 사용할 때 쓰는 안전모와 앞치마를 샀습니다. 안전이 제일이지요. 완전 군장을 하고 나니 그런 내 모습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한낮이었지만 나는 예초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무거운 예초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작업 봉을 든 팔을 편 상태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세로 하면 회전 날이 돌맹이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지요. 그런 이유로 나는 작업봉을 살짝 든 자세로 했는데, 그 자세로 하면 두 배 이상 힘듭니다. 내 생애 최초로 구입한 예초기 작업에서 안전사고가 나면 안 되므로 나는 힘이 들더라도 작업 봉을 살짝 들고 조심조심 작업을 했습니다. 이따금 회전 날이 땅속에 박히며 웽~하는 금속음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지만, 두 시간 작업을 힘든 줄도 모르고 했습니다. 300평 가까이 되는 텃밭의 잡초를 구석구석 제거했습니다.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도 많았지만, 뿌듯했습니다.
 
 아내는 작업을 마친 내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 주었습니다. 나는 촌부로서 어깨를 들썩이며 씽긋 미소를 지었지요. 노동을 끝내고 난 후의 저녁 막걸리 한 병은 최고의 만찬입니다. 술을 마시며 오늘 내가 뭔가 보여 준 것에 거만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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