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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Jan 25. 2023

미선로 교동길에서 21

문경 사는 벗 덕배가 세상에 하나 뿐인 값진 선물을 해 주었습니다. 데크에 6인용 식탁을 설치해 준 것이지요. 나무 목재로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것인데요, 인덕션까지 갖추어서 실용성은 물론 외관상 예술적인 분위기까지 연출됩니다. 편백 나무를 압축한 것이어서 묵직하고 로코코 양식의 우아함이 느껴집니다. 나로서는 너무 호사스러워 내가 이걸 사용해도 되나 싶을 정도입니다. 먼 곳에서 손님이 오시면 또 하나 자랑거리가 생겼습니다.
 
 그 친구가 지난 주말에는 차양막을 설치해 주었답니다.
 한달 전 차양목을 설치할 때, 지붕 위에 올라가는 걸 무서워 하자 동서가 지붕 아래에 설치해 주었다고 했지요. 내가 그걸 아이디어라고 자랑하자 덕배가 일갈합니다. 

“이게 아이디어라고? 차양막을 지붕 아래에 설치하면 뜨거운 바람이 지붕과 차양막 사이에 존재하게 된다고. 여름에 쪄 죽어!”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지붕 위에 올라가서 초록빛 차양막을 새로 하나 더 설치해 주었습니다. 이중 차양막이 완성되고 나니 훨씬 시원해진 것은 물론이고, 데크 아래에서 차양막을 바라보니 까만 밤하늘에 녹색 별이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적 아트가 탄생한 것이지요. 이런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추가되었군요^^
 
 영동에 사시는 싸부께서 마늘 수확하는데 함께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는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그곳에 가면 뭐라도 하나 배울 수 있고, 마음씨 넉넉한 주인 내외분이 농작물을 맘껏 가져가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랜만에 농사에서 아내보다 비교 우위를 찾았습니다. 그건 바로 마늘 캐기였는데요. 나 스스로가 깜짝 놀랄 정도로 나는 마늘 캐기의 달인이었습니다. 호미로 마늘 주변을 파고 줄기 끝을 잡아당기면 깊숙이 뿌리를 내린 마늘이 쑥 뽑힙니다. 그때의 손맛이란 낚시에 버금갈 수 있습니다. 당기는 손과 버티는 마늘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아무튼 나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한 신공으로 마늘을 쑥쑥 뽑습니다. 저만치 아래에서 끙끙대는 아내는 내게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걸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자 아내는 자신은 마늘만 뽑는 게 아니라 잡초도 뽑으며 땅을 고르게 다지느라 그런 거라고 합니다.

“여보~ 마늘만 캐는 게 아니라 흙도 다져야지요”

“아니 그래도 속도는 내가 짱 이잖아. 당신보다 훨씬 빠르네”
 젠장 이긴 줄 알았는데 다시 의문의 1패를 당합니다.
 
 영동에 온 김에 매실 열매도 땄습니다. 제가 3년 전 영동에 처음 왔을 때 매실 열매를 딴 적이 있었는데,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오전에 괴산 우리 텃밭에서 매실 열매를 딸 때 매실 열매가 잘고 벌레가 먹어 무척 안타까워했었죠. 나는 매실이 작아도 괜찮다고 아내를 위로했지만, 아내는 나무에게 미안해서 마음이 아프다는 거였습니다. 우리가 매실나무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열매가 부실해졌다는 것입니니다.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이 나랑은 딴 판이었습니다. 나는 고작 열매라는 결실만 봤는데, 아내는 나무의 건강을 본 것이지요.
 영농 매실나무의 열매는 매끈하고 컸습니다. 벌레 방지약을 쳤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 바구니 이상 매실 열매를 땄습니다. 예전처럼 힘들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매실청을 만들겠다며 설탕 15kg 한 포대를 샀습니다. 매실청 만들겠다는 아내의 말에 나는 매실주를 떠올리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다음 날 ‘오늘의 할 일’은 포도나무와 배나무에 봉지 씌우기입니다. 드라이브하면서 봉지 씌운 유실수를 본 적이 있지만 그걸 내가 직접 하리라고 생각을 못 했습니다. 지난겨울 나는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원칙 없이 해서 불안했었습니다. 그런데 봉지를 씌우기 위해 가지 끝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포도송이가 송글송글 맺혀있었습니다. 경이로웠습니다. 생명체는 어떻게든 그 삶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었지요. 여린 포도송이를 봉지로 감싸고 철끈으로 묶는 데 이것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무턱대고 하다 보면 포도송이들이 주르륵 떨어지고 맙니다. 아가를 대하듯 조심조심 감싸 안고 철끈을 가지가 부러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단단히 조여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지가 부러지거나 봉지가 빠져버립니다.
 이 일도 하다 보면 재미있습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군요. 무엇보다 작업이 끝난 후 흐뭇한 성취감이 밀려옵니다. 열매마다 봉지가 달려 있는 것이 뭔가 전문적 농사일을 한 것 같은 자부심이 넘칩니다.
 
 나처럼 어설픈 인간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대견스럽습니다. 나는 실로 날마다 변화 발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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