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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Jan 25. 2023

미선로 교동길에서 20

감자 심기, 꽃밭의 꽃

이곳 괴산은 5월이 와도 아침에 서늘한 냉기가 감돕니다. 그래서 작물 심는 것도 다른 지역보다 조금 늦지요. 우리는 언제 고구마를 심어야 할지 잘 몰라서 이웃 농가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는데, 벌써 심기 시작했더군요. 집사람이 고구마를 심은 건 지난 13일이었죠. 나보다 하루 일찍 내려와 집사람이 고구마를 다 심어 놓은 거예요. 나를 위한 깜짝쇼를 한 것이지요. 내가 한 일이라고는 물을 뿌리고 주변 잡초를 제거한 정도입니다. 하긴 내가 고구마를 심으면 뭔가 어설퍼서 제대로 자랄지 걱정이 앞서지요. 뭔가를 심는다는 것은 심오한 일이 틀림없습니다.      

농사는 심오한 일이지만 우리가 하는 농사는 어설프기만 합니다. 그건 지난달 우리가 심은 옥수수와 마을 사람들이 심은 옥수수만 비교해도 알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심은 옥수수는 한결같이 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하고 풍성하게 열리는데, 우리가 심은 옥수수는 뭔가 삐뚤삐뚤하고 자랄 생각을 도통 안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설픔은 이어집니다. 아니 나의 어설픔이지요.
 참깨 심을 때였어요. 내가 쇠막대로 구멍을 뚫으면 집사람이 참깨를 심는 고도의 분업화 시스템으로 했는데요, 내가 구멍을 너무 깊게 뚫어서 참깨가 땅속으로 사라지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살짝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나의 성실함이 그만 쇠막대를 힘껏 땅에 꽂고 말았습니다. 나는 왜 그걸 미리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따졌는데, 아내는 그걸 말을 해 줘야 아냐고 반문했습니다.

“아니, 여보! 그거 딱 보면 몰라요? 깊게 파야 하는지 살짝 파야 하는지”

그 말을 듣고 나는 민망해졌습니다. 설명을 해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데, 설명도 안 해 주면 나는 어찌해야 합니까? 물론 그렇게 항의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텃밭 가꾸기는 얼추 끝났습니다. 얼추 끝내야 합니다. 제대로 끝내려고 하면 끝도 없지요. 우리 텃밭 농사 슬로건은 ‘대충하자. 안 되면 내년에 다시 하자!’입니다. 나는 텃밭에 들어서려면 이상하게 일을 시작도 안 했는데, 허리부터 아프기 시작합니다. 대뇌의 조건반사인 셈이지요. 파블로프 실험에 등장하는 개처럼요^^ 그런 이유로 나는 이제 텃밭은 하늘의 뜻에 맡기고 꽃밭이나 꾸미자고 합니다.
 
 지난 토요일 농사 싸부가 있는 영동 지인 집에 갔습니다. 사모님이 꽃을 좋아해서 지천에 꽃이 피어있습니다. 잔디를 새로 깔아 초록이 번진 마당에 양귀비꽃이 새빨갛게 흔들리는데 내 마음도 빨갛게 물듭니다. 사실 그 옆에 빨간 새순이 단풍처럼 물든 홍가시나무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전면적으로 빨간 양귀비꽃과 염료 물을 들인 것처럼 붉게 물든 홍가시나무의 아름다움은 정열과 은은함의 대비로 펼쳐집니다. 나는 정열적인 사랑보다 은은한 사랑의 스타일이라서 양귀비꽃이 의문의 1패를 당했습니다.


 봄에 피는 국화인 마가렛이 올망졸망 무리 지어 피어있습니다. 그런데 포털에서 꽃 검색을 해 보니 옥스 아이 데이지로 나옵니다. 샤스타 데이지일 가능성도 있다고 나오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잎 모양이 쑥갓 모양인 게 옥스 아이 데이지가 맞습니다. 옥스 아이 데이지 옆의 리빙스턴 데이지는 좀더 크고 강렬한 느낌입니다. 생각해보니 괴산 우리 집에 피어있는 영산홍도 철쭉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비슷한데 작은 차이가 있으니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어야 마땅한데, 내게는 늘 헷갈리기만 합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분홍 달맞이꽃이 특별했습니다. 달을 연모해 밤에 피어난다는 달맞이꽃은 원래 노란색인데 연분홍 달맞이꽃은 낮에 일탈을 감행한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태어나서 물망초도 처음 보았는데요, 비치 빛이 감도는 파란 꽃잎이 신비하게 느껴집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을 지닌 물망초는 아련함보다는 신비함이 앞섭니다.
 

집사람은 나물을 뜯으러 갔지만 나는 꽃을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전혀 국화 같지 않은 파란 수레 국화, 바위틈에서도 잘 자란다는 빨간 송엽국, 애기똥풀보다 더 귀여운 노오란 벌노랑이, 수풀 가득 피어있는 하얀 찔레꽃 등등 꽃들은 저마다의 빛깔로 아름다움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어머, 꽃이 나부작나부작 흔들리고 있네”

‘나부작나부작’은 일반 사전에는 없는 아내의 사전에만 있는 단어입니다.
 영동 금계리 마을은 금계국이 노랗게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찐 노랑에 마을 전체가 노란 램프를 켠 듯합니다. 그곳을 드라이브하면서 우리 부부는 벚꽃 축제보다 멋진 금계국 축제에 초대받았다고 좋아했습니다.
 
 사모님이 선물로 준 달맞이꽃과 수레국화와 옥천 농장에서 구매한 남천 나무를 우리 집 마당에 심었습니다. 지난달 옮겨 심은 꽃이 시들어서 조심스러웠는데, 새 묘목들은 어디서든 무럭무럭 잘 자란다고 하네요. 호미로 땅을 파고 퇴비를 뿌려주고, 묘목을 심고, 흙으로 포슬포슬 정성껏 덮어주었는데 반려견 쓰다듬던 그 마음과 같았습니다.
 옮겨 심은 꽃은 내년에 다시 필 때, 제대로 피어난다고 합니다. 사람이든 꽃이든 뿌리를 내리려면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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