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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Feb 04. 2023

미선로 교동길에서 26

 

장마철 농부의 일을 개점휴업으로 생각하신다면 그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장마철은 비가 온 후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잡초 뽑기에 최적의 상태가 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농사일의 태반이 잡초 뽑기입니다. 예초기를 장만했지만, 농기구 사용이 서툴기 짝이 없는 나로서는 예초기 사용할 때 바짝 긴장됩니다. 돌이 튀는 안전사고가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예초기를 너무 바짝 들고 사용하면 동네 아저씨가 와서 훈수를 두니 적당히 내려서 사용하는데 긴장의 연속입니다. 다행히 어제는 예초기가 시동이 안 걸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를 선택했습니다. 아무래도 지난번 예초기 사용 후 쵸크를 내려 놓치 않아 시동이 안 걸린 것 같습니다. 사용 후 원래 상태로 돌려놓아야 하는데 깜빡했습니다. 수업 후 칠판을 원위치해 놓아야 하듯 농사도 일을 마친 후 원위치해야 합니다. 문득 생각해보니 연애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연애는 원위치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예초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호미로 잡초를 뿌리째 뽑기로 했습니다. 평소에는 낫을 이용해서 잡초 줄기를 자르는데 아예 뿌리째 뽑을 결심을 했습니다. 이걸 업계 전문 용어로 ‘발본색원’이라고 합니다. 허리가 부실한 분들이 잡초 제거 작업을 하기 위한 몇 가지 자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기술은 앉은뱅이 의자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 기술이 가장 보편적인데, 이것도 장시간 하면 허리가 아프고 매번 의자를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두 번째 기술은 무릎 꿇기입니다. 이 기술을 쓰면 허리를 세울 수 있고 농사일과 명상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세 번째 기술은 두 팔을 네발짐승처럼 사용하는 것입니다. 엉금엉금 기면서 한 손이 땅을 짚을 때 다른 손으로 잡초를 뽑는 것이지요. 자세가 민망하긴 하지만 허리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방법은 자루가 긴 낫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서서 골프 스윙하듯 낫을 휘두르면 됩니다. 타점만 정확히 하면 우후죽순 자란 바랭이 줄기 아랫부분을 도려낼 수 있습니다.


네 가지 방법을 적당히 섞어 가면서 하면 명상도 하고 원시인 체험도 하고 골프도 즐길 수 있는 것이 잡초 제거의 다채로운 기쁨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기쁨은 역시 땀 흘린 후의 한 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도 마셨고 그제도 마셨지만, 농사일을 마친 후 한 잔은 종교적 의식처럼 생략할 수 없는 리추얼입니다.     

마당의 잔디를 깎기 위해서 예초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고도의 기술을 요구합니다. 수평을 유지하지 못하면 흙이 패입니다. 유지는 참으로 어려운 기술입니다.

그래서 잔디 깎는 농기구를 장만했습니다. 보쉬 제품이 좋다고 해서 그걸로 장만했습니다. 

이제 웬만한 농기구 조립하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큼은 충만합니다. 역시 매뉴얼이 자세한 설명없이 그림으로만 제시되어 있네요.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통찰학습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쓱 보고 척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잔디 깍는 기계를 완성하고 보니 형태도 폼나고 색상도 간지납니다. 읍내에 나가 릴 전기줄도 구매했습니다. 전원을 꽂고 시동 스위치를 누르니 잔디 깎는 기계가 부웅~하고 힘차게 출발합니다. 주욱 밀고 나가 돌아보니 깎인 부분과 깍이지 않은 부분이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마당에 심어 놓은 소나무 때문에 바둑판처럼 줄을 맞춰 깎지는 못하고 삐뚤삐뚤 여기저기 닥치는대로 깎았습니다. 나는 뭐를 해도 어설픈데 잔디 깎기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켜보던 아내가 자기가 하겠다고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줄을 맞춰야지요. 주세요. 내가 한번 해 볼게요”

줄을 맞추겠다던 아내도 소나무 근처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삐뚤삐뚤해집니다. 소나무 주위를 빙그레 돌면서 라운딩 기법이라고 우깁니다. 아내가 재미있다고 해서 잔디는 그리 깎는 게 아니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뭐, 오늘도 즐거웠습니다.    

 

기다리던 코지 고양이는 오지 않고 대신 두리가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코지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는데 두리는 사료를 먹을 때 연방 두리번거립니다. 두번 째 찾아온 고양이이기도 하고 두리번거리는 모습 때문에 ‘두리’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두리가 먹는 모습을 보면 리듬감이 탁월합니다. 왼쪽 보고 사료 먹고 오른쪽 보고 사료 먹고를 네 박자 리듬에 맞게 합니다. 그러다 우리랑 눈이 마주치면 일시 정지하고 관찰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얼음 놀이하듯 순간 정지하여 두리를 바라봅니다. 아직은 경계심이 가득하지만, 언젠가 그 마음을 내려 놓겠지요.   

   

야크라는 친구도 우리 집을 어슬렁거리며 탐방했는데요, 온통 검은색이라 블랙 야크 중에서 블랙을 빼고 야크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두리와 야크는 시간 차이를 두고 우리 집을 방문하는데요. 아마 둘이 협정을 맺었나 봅니다. 나는 여전히 내 발등을 핥았던 코지를 그리워하는데 녀석도 언젠가 올 날이 있을까요? 고양이는 영역 싸움한다고 들었는데, 코지가 들고양이에게 자기 영역을 빼앗겨 못 오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참. 참새들과 까치까지 우리 집을 찾아주었는데요, 그건 데크에 설치해 놓은 전깃줄에 앉아 놀다가 똥을 한 무더기 퍼질러 싸 놓은 걸 발견하고 알았답니다. 그래 똥 치우는 일이 짜증나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이 집 주인이 순한 사람들이란 걸 새들도 알고 맘 편히 놀다 간 것 같습니다. 신기한 건 내가 만들어 놓은 새집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집만큼은 자기들이 스스로 짓겠다는 의지이자 자존심이겠지요. 아직 새들이 지은 새집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새와 고양이는 서로 친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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