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와 벌
괴산으로 이사를 완료했습니다. 이사 완료라고 한 이유는 그동안 주말에만 괴산에 갔기 때문에 침대와 장롱 등 큰 짐은 비로소 엊그제 왔기 때문입니다.
이사 가는 날 옷가지를 정리하면서 과감하게 많은 옷을 버렸습니다. 주로 원색 계통의 옷들을 버렸죠. 학교에 출근해서 아이들과 즐거운 소통을 하기 위해 입었던 패셔너블한 옷들을 싹 정리했습니다. 이제는 괴산에 가서 촌부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괴산으로 이사를 마친 후 간단하게 짐 정리를 하고 나서 우린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우리의 동네 한 바퀴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처럼 다양한 일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동네를 한 바퀴 걷는 것입니다. 지난겨울 걸었던 자전거 길이 예뻤던 기억이 나서 건너 마을 칠성면까지 갔다 왔습니다. 땡볕에 거의 두 시간쯤 걸었더니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천 물소리와 가로수 그늘 밑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없었다면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찬물로 샤워하고 나서 마시는 쏘맥은 열반주입니다. 거실 창밖으로 비치는 초록의 풍광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는데, ‘아~ 좋다!’라는 말이 연방 나옵니다. 저녁 뉴스 속 세상은 복잡한 정치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이곳 미선 마을은 한가로운 구름만 산 정상위에 두둥실 떠 있을 뿐입니다.
이사 첫날 과하게 마신 기념주 때문이었을까요. 아침 태양이 이마를 간지럽힐 때까지 꿈결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게으름을 피우며 일어나는 것이 싫지 않았습니다. 어제 술을 마시며 새벽에 일어나 일하기로 굳게 약조했으나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부끄러워지지 않았습니다. 아침을 먹고 천천히 하면 되니까요.
아내는 농작물을 수확하고 나는 예초기로 잡초를 뽑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예초기에 시동이 안 걸립니다. 겨우 걸리는가 싶더니 금세 푸르르 꺼집니다. 휘발유와 엔진 오일의 비율을 25대 1로 못 맞춰서 그런 건가 엔진 오일을 좀 더 부었지만 마찬가지입니다. 덕배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비율의 문제가 아니라 노즐에 먼지가 끼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니 분해해서 노즐에 핀을 꽂아 닦으면 된다고 간단하게 알려줍니다. 그게 이론상으로 무슨 말인 줄은 알겠지만, 예초기를 분해하라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사실 나는 노즐이 뭔지 잘 모릅니다. 덕배가 이야기할 때는 아는 척했지만 검색하고 유튜브를 봐야 합니다.
분해하기 전 혹시 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동을 걸었는데 부웅~ 힘차게 날개가 돌아갑니다. 덕배에게 전화한 사실을 안 예초기가 군기가 바짝 들어 자기가 할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거지요. 예초기에 인공 지능이 탑재된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예초기가 사람보고 간을 본 것이었습니다.
예초기로 열심히 작업을 하는데 아래 집 아저씨가 오더니 한 말씀 합니다.
“예초기를 왜 깊이 사용하지 않는 거죠?”
땅에 최대한 밀착시켜 사용해야 잡초를 제대로 제거하는 것 아니냐는 질타였지요.
나는 겸연쩍게 미소지며 대답했습니다.
“무서워서요!”
나는 예초기가 땅에 박힐 때 찌잉~하는 소리와 그 느낌에 진저리를 치곤 했으니까요. 아저씨가 지켜보는 바람에 나도 할 수 있다는 듯이 예초기를 깊숙이 내려 사용했습니다. 사실은 풀을 너무 짧게 자르면 내 할 일이 일찍 사라지기에 대충 해야 합니다.
지난주에는 비가 내려 예초기를 사용하지 않고 잡초를 직접 뽑다가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1미터가 넘게 자란 바랭이풀은 나무처럼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 그걸 뽑는 건 어마어마한 힘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으로 정면승부를 펼쳤더니 허리에 무리가 간 것입니다. 요가하는 큰딸의 도움으로 많이 풀어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이 영 불편합니다.
잡초를 제거하다 잡초더미 속에 핸드폰이 사라지는 실종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핸드폰 울리는 소리는 나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호미로 풀을 파헤치는데 핸드폰이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호미에게 핸드폰 탐지라는 특수 기능이 있음을 유일하게 깨달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농사를 하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 집 울타리 측백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그 옆으로 지나치기가 불편하다는 민원이 접수되었습니다. 나는 전지 칼을 들고 즉각 해결에 나섰습니다. 지난봄에 경험하고 나서 알게 되었는데 가지치기도 낭만이 아니라 중노동입니다. 몇 그루도 아니고 수십 그루 나무의 가지치기는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경지로 해야 합니다. 나는 열심히 작업을 하고 나서 끝나갈 무렵 아내에게 자랑할 마음으로 와서 한번 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수고했다고 박수칠 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호박벌들이 측백나무 안쪽에 벌집을 만들어 놓은 걸 모르고 그만 벌집 통을 건드리고 만 것입니다. 전지가위가 벌집 통을 건드리는 순간 한 무리의 호박벌이 일제히 우리 부부 머리 위를 맴돌더니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나는 순간 그대로 부동의 자세를 유지했고 아내는 털석 주저 앉았는데, 벌의 공격 대상은 움직였던 아내였습니다. 머리와 어깨 한 곳씩 물렸는데 머리는 묵직하고 어깨는 따끔하다고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방에 들어와 얼음으로 찜질하고, 진통제를 먹고 안정을 취했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이 되었지만 어깨에 붉은 반점이 커다랗게 남았습니다.
시골에서 생활하다 보면 뱀도 밟게 되고 벌에게도 쏘이는 등 예기치 못한 끔찍한 일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익숙해진다는데 아직 우리 부부에게는 두려움의 세계입니다.
우리 앞에 예기치 못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