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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Mar 22. 2023

미선로교동길에서 33

산수유나무 그늘아래서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라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지만, 괴산고등학교 교정에 핀 산수유나무는 파란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답니다. 노란 하늘이라니 의심 많은 당신은 절대 믿지 않는 눈치인데, 산수유나무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며 아이들 노란 희망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하늘 향해 기품 있게 솟아오른 소나무가 그 노란 희망을 하늘에 길어 올립니다.


산수유나무 아래 하늘을 바라보면 아이들 노란 웃음이 가득합니다.



수업 3주차를 맞이하며 아이들과 제법 친해졌습니다. 점심시간 벤치에 앉아 있으면 멋지다고 엄지척을 표시하면서 인사를 건넵니다. 나도 너스레를 떨면서 화답합니다. 금요일 방과 후에 축구 같이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친구도 있습니다. 당장 내일 축구공 가져오라고 했습니다.중복조합이 어렵다며 확률 문제를 묻는 아이에게 비법을 전수하니 득도한 스님처럼 깨달음의 미소가 가득해집니다. 영산홍 필 무렵이면 교정에서 아이들과 인생 샷을 찍을 순간도 오겠지요.



아이들과 수다를 떨고 싶어 쉬는 시간 미리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이들은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아이들의 휴식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 수업 종이 쳐도 천천히 들어가는 것이 교사의 미덕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어 마음이 분주해진 나는 종소리보다 빨리 교실에 갑니다. 노트북을 열고 유튜브에서 아이들의 희망곡을 들려줍니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친구도 있고 춤을 추는 아이도 있지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은 비트 리듬을 타기 시작합니다. 노래처럼 역동적인 마인드로 수업이 시작됩니다.



좌석표를 보지 않아도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아이가 많아졌습니다. 아이들 특성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고 아이들 관심사에 같이 관심을 공유해주면 아이들과의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요. 기타 좋아하는 친구에게 다음 시간에 기타 한 곡 연주하라고 했더니, 눈빛이 진지해집니다. 춤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뉴진스 춤 같이 춰볼까 하면, 진짜요? 물어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이곳 괴산 친구들은 정말 순박합니다. 나는 그동안 순박이라는 단어를 개념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 순박함은 교사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아이들은 순박한 눈빛으로 고맙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수업을 마치면 고맙다고 합니다. 진짜 고마워하는 거죠. 그 순간 내가 더 감동을 받습니다.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내용까지 찬찬히 설명하고 반복합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새롭게 설명합니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도 내게 질문을 스스럼없이 합니다. 아이들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수업은 그야말로 감동입니다.


아이들이 먼저 모둠 수업을 제안했습니다.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제대로 운영된다면 모둠 수업이 좋습니다. 사실 서울에서 모둠 수업을 해 본 경험이 있지만 좋았던 기억이 적었습니다. 하지만 괴산고 친구들은 친구들끼리 사이도 좋고 수업에 열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쌤을 믿고 따릅니다. 그렇다면 모둠 수업이 잘 될 가능성이 크지요. 모둠 구성을 아이들 스스로 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아이들은 신나게 스스로 합니다. 이곳 친구들은 서로 설명하고 같이 공부하는 문화에 익숙합니다. 오늘도 음악을 들려주려고 미리 쉬는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니 몇몇 아이들이 수학 문제를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잘 아는 학생이 조금 느린 친구에게 설명해 주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쉬는 시간에 빙 둘러앉아 수학 문제를 같이 의논하는 모습이라니요... 어느 학교 아이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수학 시간이 하루에 두 시간이나 있는 이유에 대하여 아이들이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고백을 했습니다. 괴산의 고즈넉한 풍광에 마음을 뺏겨 이곳으로 귀촌했고, 괴산고에 오게 되었는데 목요일에 서울에 가야 해서 수요일까지만 학교에 나온다고 했습니다. 쌤이 4일을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하루에 수학 수업이 두 시간씩이나 있게 되었다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지요.


나를 바라보는 순정한 눈망울 앞에 내 마음 어딘가에 산수유나무처럼 노란 불빛이 켜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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