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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프리트 May 16. 2024

삼국지이야기 9

손권이야기: 남들 눈에는 다 보인다

생활체육 배드민턴을 한 지 오래되었다. 생명의 은인이다. 

체력 키우고 다이어트하는 데는 이만한 게 없는 듯하다.

생활체육에서 배드민턴은 단식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복식으로 운영된다. 4명이 한 경기를 치른다. 

하다 보면 운동만 하는 게 아니다.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고 인간관계도 꽤 작동한다. 

고수와 하수가 적나라하게 존재해서 불굴의 투지로 이기는 것도 거의 존재하지 않고 실력대로 승패가 나누어진다. 한마디로 약수터에서 하는 배드민턴은 아닌 거다. 

배드민턴에는 등급이 있는데 선수출신 말고 일반인 중에서는 A급이 제일 잘하는 사람이다.

A급이 배드민턴을 하는 걸 보면 눈이 호강하는 느낌이다. 그분들이 나하고 게임을 해봤자 승패는 뻔하기 때문에 재미도 없고 설사하더라도 상대가 안된다. 

어쩌다 숫자가 모자라면 한자리 끼어서 게임을 하기도 하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면 느끼는 게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이것이다. 

'고수는 상대편의 빈자리를 정말 잘 본다!'라는 점이다. 

배드민턴이 쉴 새 없이 움직여서 콕을 받아넘겨야 하는 운동이다 보니 자세가 무너지지 않으면서 코트 공간을 커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보다 고수와 게임을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 무너진 자세 또는 빈 코트를 기가 막히게 치고 들어오는 걸 느낀다. 요행수를 바라고 싶어도 고수와 게임을 하다 보면 그게 없다. 고수일수록 기본적인 실력차이와 더불어 상대편의 약점을 잘 파악하고 찌른다. 


삼국지 주인공 중 하나인 손권은 오나라의 왕이다. 적벽대전 당시 오나라의 왕이기도 하다. 꽤 오래 살다 죽는다. 손권은 아버지 손견 그리고 형인 손책이 갑자기 죽자 왕이 된 케이스인데 그는 아버지나 형처럼 특별히 무예가 뛰어나거나 공명처럼 지모가 뛰어나지 않게 그려진다. 하지만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끈다. 화려하진 않지만 실속은 넘치는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촉나라는 위나라와 전쟁을 벌이면서 옆 나라인 오나라와 친선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신을 보내 친선관계를 깨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만약 오나라가 촉나라를 공격하면 북쪽에서 위나라 동쪽에서 오나라의 협공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공명이 비의라는 사신을 보내 오나라의 동맹을 시도하고 성공한다. 


... 손권이 비의에게 물었다. 

"지금 공명의 곁에서 병량 외에 군무를 돕고 있는 사람은 누구이오?"

"장사 양의입니다."

"그럼 항상 선봉에 서는 장수는 누구이오?"

"위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으로는 양의, 밖으로는 위연이라. 하하하."

손권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직 양의와 위연을 본 적이 없지만, 둘 다 촉을 이끌 인물은 아닌 듯하오. 그런데 어찌하여 공명 같은 인물이 그런 자들을 쓰고 있는 것이오?"

 비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적당히 둘러댔다. 그리고 나중에 기산으로 돌아가 공명에게 전하자, 공명이 탄식하며 말했다. 

"과연 손권의 안식이 뛰어나구나. 아무리 잘 보이려고 해도 천하의 안목은 속일 수 없구나. 위연과 양의가 그릇이 작다는 것은 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의 손권까지 그것을 꿰뚫어 보고 있을 줄 은 몰랐구나."


꿩은 위험이 닥치면 머리부터 숨긴다고 한다. 그래서 커다람 몸통으로 인해 들켜서 잡힌다고 들었다. 삼국지 최고의 인물인 공명이 제아무리 감추고 싶었어도 손권에겐 꿩처럼 보였나 보다. 

배드민턴처럼 등급이 나누어지는 고수는 금방 알아볼 수 있지만 손권처럼 화려하지 않은 사람은 알아보기 힘들다. 중요한 건 공명이 손권에 대해 탄식한 것처럼 고수는 바깥세상에서 '눈은 열고 입은 닫은 채'로 날 바라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배드민턴에서 고수가 약점을 알아보는 것처럼 감추려 해 봤자 감춰지지 않고 포장하려 해 봤자 그들에게는 적나라하게 보일 것이다. 상대방이 못 알아봐 주길 바라지만 고수들은 손권처럼 밖에서 다 보고 있다. 

그런데 공명은 나은 편이다. 자신의 약점이 무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고수가 많다는 걸 모르고 약점을 강점으로 둔갑시켜 자기 위안하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것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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