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름 일기

폭염주의보

20250628

by 권여름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마자 텁텁하고 진득한 냄새의 공기가 코를 자극했다. 날씨가 점점 동남아 같아진다는데, 지금의 공기가 습하고 따가웠던 오키나와의 공기에 가까울까, 점막에 훅 들이치는 물기를 머금은 태국 공기에 가까울까 고민을 하다 그냥 대구 공기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계획보다 이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 한 입씩 먹으며 걷다 보니 입과 식도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시원함과 텁텁한 공기가 묘하게 완벽한 퍼즐처럼 느껴졌다. 날카로움과 묵직함의 조화란... 절묘한 균형에 더위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는 별 것 없다.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는데 임직원카드가 먹히지 않아서 왜일까 의아했다가, 내가 휴직상태라 그렇구나를 깨닫고, 참 야박한 회사다 생각했다. 기차 시간이 임박해서 얼른 밥을 먹고, 커피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혈육에게 쏟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는 그리 아깝지 않다. 사실 즐거웠다. 가족이란 참 신기하다.

어차피 오전 공부를 공친 김에 오늘은 공부를 쉴까 싶었는데 막상 쉬어도 크게 할 건 없다. 에어컨 바람이나 맞으면서 쉬엄쉬엄 공부나 해야지.



폭염주의보의 새로운 매력을 깨달아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폭염주의보야, 그동안 미워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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