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제작과 논문투고의 공통점

싱크로율이 놀랍도록 일치한다.

by 권여름


논문은 마치 군대 같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의 군대일화가 군대 가기 전의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것처럼,

'논문 쓰다가 탈모가 온다.', '전생에 죄를 지으면 가는 곳이 대학원.' 이런 류의 구전설화가 논문 공포를 부채질하여 막연히 두려워진다.



나 역시 고통을 각오하고 논문을 시작하였는데, 생각보다 논문 쓰기가 고통스럽지 않다.

이유는 간단했다. 앨범 제작 과정과 논문 투고 과정이 구조적으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앨범 제작 vs 논문투고


앨범 주제(콘셉트)를 잡는다 -> 명확한 가설, 변수를 설정한다

레퍼런스를 수집한다 -> 선행연구를 읽고 정리한다

수없이 수정하고 버린다 -> 수없이 수정하고 버린다

혼자 작업하지만 결국 타인의 피드백을 받는다 -> 지도교수님, 심사자 피드백을 받는다

발매 기준(러닝타임, 음질, 장르 적합성)을 맞춘다 -> 투고하려는 학회지의 규정(분량, 형식)에 맞춘다

발매 전 유통사와 행정적인 서류를 제출한다 -> 투고 전 수많은 행정 서류(IRB 서류 포함)를 작성한다



매체만 바뀌었지 앨범제작과 논문투고는 동일한 창작 노동이었다.




그 외에 주관적으로 느끼는 비슷한 결은,


내가 기승전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 나만 아는 이스터에그를 숨길 수 있다는 점, 큰 맥락과 세부맥락이 딱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놀라운 정도로 정말 대부분이 비슷하지만, 사소한 차이점을 꼽자면,


앨범을 퀄리티를 올리기 위해 비용이 들고, 타인과 의사소통을 해야 하지만,

논문은 퀄리티를 올리기 위해서는 내가 조금 더 수정하고, 나만 더 고생하면 된다.

이 부분이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나는 종종 작지만 거슬리는 부분을 앨범에서 나의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하고 싶어 하는데, 그럴 때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눈치가 보인다. 그러나 논문은 내가 거슬리는 부분을 내가 원하는 만큼 끝까지 수정해서 거슬림 없는 매끈한? 아름다운? 글을 작성할 수 있다. 심지어, 미세조정을 덕목으로 인정해 준다.



지금까지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나의 섬세함을 세상과 타협하려고 애썼다면, 논문에서는 나의 섬세함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 음악만큼이나 나의 성향과 작업환경이 일치하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하루빨리 논문이 끝나면 좋겠다. 힘들긴 하다. 고통스러움과 힘든 것은 별개이다.^^)





교육학에서 '지식의 구조', '지식의 체계'에 대해 배울 때 십 분 공감했는데,

앨범과 논문도 같은 구조와 체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또 놀랍다.


참 놀라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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