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간사하다.
마음이 쓸데없이 덥혀져 산바람이 그립다고 찾은 산사였다.
보제루에 앉아 지난여름 하릴없이
지리산이 어디냐며 시비를 걸며 보내버렸던
바람을 다시 찾았다.
찾지 못할 바람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바람이었고, 잡히지 않을 바람이었다.
그럼에도 그 바람이 나를 맞는다고 거짓 웃음을 흘린다.
간사한 인간 같으니.
네가 바람의 속내를 먼지 티끌만큼이라도 아느냐?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버리는 한 장의 시간에 각황전을 헤매지만 사라진 석등은 불을 밝히지 못하고 멀거니 홀로 불견을 실천한다.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난 잘 안되던데... 늘 남의 잘못을 찾으려 눈을 부라리고 늘 남의 단점을 찾으려 실눈을 뜨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식지 않는 마음을 각황전 기둥에 슬쩍 기대앉아 지친 몸뚱이를 쉬게 한다.
지친 것이 몸뚱이뿐이랴
눈도 지치고 귀도 치치고 입도 지쳤을 것을.
조용히 눈을 감고 세상 모든 소리가 차단돼 홀로 외로운 부처의 손을 잡고 한마디 말없이 나누는 담소가 더운 기운을 삭힌다.
그렇게 각황전 마루에서 부처가 주는 세상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온 어느 일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