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 잠시 기도를 했다.
그저 평안하시길.
다른 바라는 건 없으니 그저 평안하시길.
정치고 백성이고 다 잊으시고 그저 평안하게 웃으면서 계시길.
그렇게 나는 오늘 하루를 열었다.
15년 전 눈이 붓도록 열었던 아침보다는 훨씬 감정적으로 정리된 아침이었다.
날도 좋았다.
하늘은 맑았고 바다도 하늘과 같은 색으로 지구를 흐르고 더위를 데려오고.
창가에 서면 작은 지구 위에 선 어린 왕자가 생각이 난다.
나도 작은 지팡이를 짚어볼까?
나도 나만의 장미를... 아니다. 책임지지 못할 또 하나의 무게를 얹는 것을.
몇 장의 글자들이 날기도 하고 남기도 하고 찌르기도 하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글들을 안아 내 품에 풀어놓아 뛰어놀 수 있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도
무게라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한참을 창가에 섰다.
잔잔한 바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에 없는 시간을 보냈다.
문득 정신을 차린 것은 톡 소리였다.
ㅡ아이고 다리야. 정신을 얼마나 놓고 있었다냐.
아무렇지 않게 아이고 소리를 뱉으며 늙음을 스스로 확인한다.
톡을 확인한다.
'신경림'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알리는 톡이었다. 아이고를 지저귀었던 입을 꿰매어버리고 싶었다.
소식을 전하시는 우리 선생님의 마음이 가난해지시겠구나 싶은 게 내 마음조차 함께 그 길을 걷는다.
오늘은 이런 소식 듣지 않았으면 했나 보다.
갑자기 아직도 가보지 못한 봉하가 그립다.
발길을 그곳에 두면 내 맘 속 가난이 너무 흉흉하게 드러나 보일까 봐 부러 피하고 돌아 멀리 도망 다니는 봉하가 그립다.
오늘 가난해지는 선생님의 마음을 달랠 길이 없으니 그저 함께 걸을 수밖에.
ㅡ영면하십시오. 많은 문장을 남기셨으니 아름다운 여행길이었을 겁니다. '가난한 사랑 노래'가 생각이 납니다. 아름다운 분들끼리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