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잃어버린 공간에 마음을 둔다는 것

by 희도

너무. 보고 싶어서.

하늘은 그냥 장마라고 했다.

그러기엔 또 갑자기 맑았다.

어두웠던 세상을 갑자기 뚫고 지나온 햇볕의 눈부심에 눈을 뜰 수가 없다.

감아도 뿌연 어둠이고

눈을 들어도 맑지 않은 회색이지만

부신 햇볕은 무섭게 피부를 물고 늘어진다.


나는 아마 죽었던 듯도 싶다.

그 어떤 날,

조금씩 갉아먹던 고통은 어두워지면 늘 방안에 서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는 아마도 기다렸던 것도 같다.

따스한 햇살을 품고 고실고실해진 귤껍데기를 풀어놓은 물에 반신욕을 하고 깨끗한 면 잠옷을 입고 곧 찾아올 그를 단정하고 품위 있게 기다렸다.

그에게 잠식되고 나면 나의 단정하던 기품은

땀냄새가 삼켜버려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테니.

또 시간이 흐르면서는 오기도 생겼던 듯도 싶다.

죽더라도 소리는 지르지 않을 것이야.

고통에 몸부림쳐 나를 잃더라도 목소리만큼은 내어주지 않을 것이야.

절대... 그것까지. 지지는 않을 것이야.

어미의 눈물은 땀으로 젖어 좁은 방 공기 속을 돛대도 없이 흔들렸다.

서로 간의 몸싸움을 세 번쯤 치르고 나면

희붐은 창 틈으로 넘어오고

지친 건지 할 일을 다한건지 그는 아쉬워하며 돌아섰다.

밤새 새긴 땀자국에 애간장을 녹인 숨 한 자락으로 감히 끌어안던 어미의 슬픔을 나는 또 감히 괜찮다 웃어주지도 못했다.

죄스런 마음만 안고 설핏 든 잠을 위로한다며

찾아와서 묻는 이들의 발길이 깨웠다.


난 아마 그때 죽은 듯도 싶었다.

어미의 애간장 끓는 눈물.

눈물조차 보이지 못하는 조부모의 갈 곳 잃은 눈길들.

말 한마디 없는 그들의 큰 위로가 나를

잡았는지도 모른다.


내 위로의 방식을 너도 따라 해야 한다는 이상한 나라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섣부른 위로는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한다. 그 순간. 그 시간. 그 어떤 날.

그들의 위로가 듣고 싶지 않았고 조금의 위로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온전히 울만큼 울게 두라고.

아플 만큼 아프게. 지나가게 두는 것도.
마를 때까지 두는 것도. 그래야 슬픔도 가라앉는다고. 때로는 혼자 있게 두는 것도 위로라고.
아파서 흐르는 눈물을. 그리움에 몸서리치다 흐르는 눈물을 남은 자의 눈물 때문에 가는 이 가 좋은 곳으로
못 간다고 하면 위로일까
협박일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곡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을 정도로 울 시간을 주었는데 그럼 그때 그분은 좋은 곳으로 못 갔을까?

말은 만든다고 다 말일까?

어디서 온 말일까. 궁금하다.

아이러니한 생각 한다.
내가 죽었는데 나 좋은 데 가라고 아무도 안 울면
내가 너무 서러울 것 같다는 생각.


너무 보고 싶어서.

햇볕이 맑은 오늘 읽지도 않는. 대답도 없는. 친구의 톡에. 이젠 잃어버린 공간에 보고 싶다 한자리 남긴다.

내일은 또 비가 오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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