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다
강소이(23년 한국문학상 대상 수상 시인)
1. 그가 내 가을에 스며들다
내가 그 사람을 생각했었나?
그가 아라뱃길로 여행을 떠나고
빈자리가 생겼다.
그 사람이 있었으면
도서관 가는 길이 쓸쓸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거운 책도 들어주었을 테고,
기름진 음식은 아니어도
고프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제 혼자 도서관을 다녀오며
무거운 책, 허기, 쓸쓸함을 품었다.
그가 이미
내 가을에 스며들어 있었나 보다.
2. 낙엽과 아버지
도서관 문을 나서자
바닥엔 마른 잎이 쌓여 있었다.
푸르던 색이 어느새 갈색으로—
올해 처음 본 낙엽이었다.
바람 더 쌀쌀하게 볼을 스친다
잎이 지는 것도 모른 채,
가을이 지나가는 것도 모른 채
나는 무엇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을까?
며칠 전 추석에 뵈었던
아버지의 굽은 등,
나에게 푸른 잎 물려주고
말라가고 계신지도 모른다.
나는
열일곱 때 내 할머니 앓아누우셨어도,
중간고사 시험공부로 도서관에 틀어박혔던
정 없던 철부지였다
이 나이가 되어도 나는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
도서관 옆으로
한강이 말없이 흐르고 있다.
3. 한강 위의 고백
한강 위로
저녁 햇살이 부서진다.
나는 오래도록
사람과 시간 사이를 떠돌았다.
빈자리 속에서,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나를 비춘다.
그 사람도
아버지의 등도
할머니께 대한 철없음도
내 마음속에 이미 스며 있다.
모든 허기와 쓸쓸함이
바람에 실려
강물 위로 흘러간다.
이제 나는
철없음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내 가을에
스스로 발을 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