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 한 알

한 알 한 알

2026. 1. 14.

강소이(25년 한용운문학상 평론 대상 수상)


오늘은 사놓고 먹지 않던 병아리콩이며

서리태콩, 검정보리를 흰쌀에 섞어

한 통에 담았다


어느 들녘에서 착한 이들이 허리 굽혀

거둬주었을 알곡 한 알 한 알을 섞으며


어느 들녘의 태양이 양기되어

한 알 한 알에 들어와

땀방울로 맺혔을 것을

생각하며


어릴적 한 동네에 모여 살던

종가 아저씨들의

햇살에 주름진

검게 탄 얼굴이

눈앞에 스친다


난 도시 여자라

손가락으로 클릭만 해도

내일 새벽에 문 앞에 대령될

알곡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밤새 서울로 달려오고 있을

알곡들이여

미안하다

나 혼자만 편해서


미안하다

나 혼자만 얼굴이 하얘서


어느 날 들렀던

내 할머니 산소 옆에

산소를 쓰고 계신

검게 탔던 인구네 할아버지며

미구네 할아버지며

그들이 허리 굽혀

모내기하고

김 매고 수확해 준 양곡들이

오늘도 내 집 앞에

배송되겠지


하늘이 익혀준

한 알 한 알

태양이 익혀준

한 알 한 알


A4용지가 밭이고

컴퓨터 자판이 곡괭이인 여자

얼굴 하얀 도시 여자


보랏빛 미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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