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해를 건너온 시간의 골목 끝에

강소이 (25년도 한용운문학상 평론 대상 수상 시인 )

서른 해를 건너온 시간의 골목길 끝에서

강소이

2026년 1월 9일

(감기 몸살이 심한 날)


감기 때마다 찾아와

뜨끈한 연포탕을

먹여주던 H


연포탕 한 그릇으로

마음이 먼저 따뜻해지고

컬럭이던 시간 위에

다시 꽃 한 송이가 피었다


받는 일은 늘 조심스럽고

주는 일은 아직 서툴러서

나는 오늘도

중간쯤에서 머뭇거린다


연포탕 골목길에서

문득

서른 해 전 다니던

홍제동성당 가는 길을 떠올리고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는다


서른 해를 건너온

이 골목길 끝에서

서른 해 전과는 다른

아니,

필명과 열 권이 넘는 저서를 가진

조금은 낯선 나로

성당 마당을 밟고 있다


여전히

쓰고 싶은 글이 쌓여 있고

드려야 할 기도도

쌓여 있는 밤


겨울 바람 차가운

홍제동성당

서른 해 전보다

주름은 늘었으나

감기 앞에서는

여전히 겁이 많은

여류 시인이

겨울 바람 속에서

성모님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삶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여

서른 해를 건너온

골목 끝에서

성모님 앞에 선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에 건네진

따끈한 국의 온기,

함께 걷다

잠시 들른 성당

그리고

다시 기도하겠다고

마음먹는

이 순간 안에 있었다


어쩌면

사막의 모래가 가득하고

바람이 심하던

광야 어디쯤에서도

수없는 몸살 때마다

수없는 기침 때마다

수없는 절망의 순간마다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을

주님


서른 해 넘도록

성당 가는 길을 잊고 살았어도

내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주셨을

주님은

거기

계셨다


먼 먼 길을

돌고 돌아

언젠가는

꼭 돌아오리라

믿으시며

문을

활짝 열어두고

기다리고

계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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