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서 먹는 상징 같은 음식들이야

엄마도 우울했고

by 명랑 숙영

카톡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겨우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그래, 그렇구나, 알겠어.

더 아픈 말들이 나올까 봐 "수고해"라고 마침표를 찍었지만 상대는 또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읽고 생각을 정리한 후 답글을 쓰는 나는 버퍼링에 걸렸다.

상대는 빠른 속도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난 따라갈 수 없었다.

올라오는 새로운 내용이 마음에 파장을 일으켜 당황스러웠지만 숨을 고르며 읽었다.

상대의 감정은 차분하고 솔직했기에 흔들려도 잠잠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어릴 때 자라면서 먹었던 밑반찬들 별로 안 좋아해. 그때 먹을 때 가정분위기도 우중충했고 엄마도 우울했고 집도 작고 습했고 항상 돈 걱정하는 소리 들으면서 먹었고 그래서 좋은 기억도 없으니 나한테는 돈 없어서 먹는 상징 같은 음식들이야."


한마디 한마디에 그 시절이 적나라하게 떠올라 가슴이 아렸고 무엇보다 딸이 받은 상처가 현재 진행형인 것 같아 부모로서 자괴감을 느꼈다.

"그래, 그랬구나. 네 생각 잘 알았어. 수고해."

슬픔에 눈물이 차고 가슴이 먹먹했다.

그 시절 내가 처한 상황을 아는 딸이 나를 배려하지 않은 것 같아 섭섭했다.

그때 난 개인 파산을 당하고 황반변성을 앓으며 가정을 지키고자 애썼던 30대 중반 엄마였다.


"지난번에 준 것도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도 없었어. 안 좋아하는 것만 다 해줬는데 말도 못 하고 먹다가 아직 냉장고에 좀 남아있다. 해줄 거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해주고 그게 안된다면 안 해줘도 돼"

딸은 사실과 감정, 자신의 요구를 표현하고 내 상황을 이해하고 수용했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데?"

아직까지 딸이 좋아하는 음식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까지의 관계를 평가받는 것 같아 머쓱했다.

딸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모른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던 시절, 하루 식비 중 몇 가지 반찬으로 무한 돌려 막기 하던 때였다.

어린 두 딸은 반찬투정하지 않고 뭐든 잘 먹었다. 없어서 못 먹여 안타까울 뿐

하지만 이 생각도 나만의 착각일지 모르겠다.

어린 나이에 가정형편을 눈치채고 불평 없이 그냥 주는 대로 먹진 않았을지.


"이번 참에 솔직히 말한다"라고 했다.

나도 그 시절, 내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항변하고 싶었다.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상대를 공격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어렵고 괴롭던 그 시절을 잘도 견뎌낸 자신을 보호하고 싶었다.

"근데 맘은 좀 아프네. 어린 시절 얘기도 그렇고..."

상대의 말을 인정하니 오히려 담담했다.

하지만 계속된 SNS 대화는 소통되지 않아 답답했고 난 감정이 상했다.

상대가 보낸 톡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자 난 도망치듯 대화방을 빠져나왔다.

밑반찬 만들어주려고 시작한 선의의 톡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


카톡 내용을 다시 읽으며 며칠을 생각했다.

난 상대의 아픔보다 내 아픔에 더 집중한 것 같다.

상대의 마음과 처지를 헤어리기보다 내 아픔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상대를 수용하기보다 자신이 수용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공감받지 못해 섭섭했고 인정받지 못해 외로웠나 보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어린 딸이 경험했을 아픔을 엄마인 나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어른이면서도 어린 딸의 속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어려서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충분히 보듬어 주지 못했다. 가정이 안전한 울타리이고 엄마아빠가 세상의 중심이었을 그 마음을.

이유야 어쨌든 난 엄마로서 미숙했고 더 성숙했어야 했다.

하지난 나도 엄마가 처음이니 자책하기보다 용인하고 싶다.


'회피'로 갈등을 피하는 '거짓 평화주의 자'인 나와는 달리 상대는 이번엔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기 위해 용기를 냈다.

상대는 관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갈등을 수용한 것 같다.

'상대를 이해시키기 위한 과정이지만 꼭 과거의 아픔을 조목조목 건드려야 했을까'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유감스럽지만 이 또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 여긴다.

나라면 내지 못했을 용기다.


회피하지 않고 조심스레 관계 속으로 한 발작 들어갔다.

밑반찬을 만들지 않고 다만 물어보았다.

바로 먹을 수 있게 손질해 줄 테니 가져가겠냐고.

상대는 그러겠다고 했고 불편한 관계의 짐을 조금 덜었다.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딸이 솔직하게 표현한 건 둘의 관계가 건강하기 때문이라고.

나도 그러길 바랐고 그렇게 말한 친구가 고마웠다.


시간이 흘러 딸은 20대 후반이 되었고 난 50대 중반을 지났다.

각자의 상처 치유에 집중하며 '시간의 약'을 바르면 언젠가 상처가 아물 날도 오겠지.

그러면 그때 처했던 각자의 상황과 환경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서로 위로하고 보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엄마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엄마가 그 시간을 기다려야 했듯

내가 엄마의 시간에 다다르면 엄마는 또 다른 시간을 견뎌야 하겠지.

멀어진 만큼 가까워지기도 하며, 또 멀어지기도 하며

그렇게 서로의 시간은 다르게 가고 엇갈리며 흘러간다.


나는 엄마를 이해하고 애달프게 여겼지만 전적으로 수용하지 못했고

엄마는 더 이상 나를 기다려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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