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챗지피티의 시대,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나?

by 꿈강

여기저기에서 챗지피티라는 말이 들려온다. 이건 뭐지? 호기심을 넘어 궁금증이 흘러넘칠 즈음, 구독하는 시사 주간지에서 특집 기사를 읽었다. 어렴풋하게나마 챗지피티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교사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겨났다.


'챗지피티의 시대에 가르친다는 것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가르치다'의 사전적 의미는 '지식이나 기능 이치 따위를 깨닫게 하거나 익히게 하다.'이다. 내 경험으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의 '가르치기'는 '지식을 익히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양한 지식을 제공하여 그 지식을 알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의 '가르치기'는 이제 그 효용을 다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뛰어난 교사라도 챗지피티보다 다양한 지식을 제공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또 요구한 사람이 제공한 지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챗지피티는 얼마든지 다시 요구자의 필요에 맞는 지식을 제공한다고 한다. 교사가 그러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비슷한 질문을 서너 번만 해도 짜증이 밀려오는 게 사람의 일반적인 성정이다.


문제는 학교에서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대응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사실 챗지피티 등장 이전부터 학교의 변화에 대한 갈망은 상당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은 이미 클리셰가 아니던가.

시를 가르칠 때를 가정해 보자. 시어의 함축적 의미, 시의 운율, 표현 기법, 주제 등을 정리해서 알려 주고 교과서에 제시되어 있는 학습활동을 푸는 게 일반적인 과정이다.


이런 식의 수업은 챗지피티가 교사보다 훨씬 더 짜임새 있게 진행할 수 있을 듯하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양질의 정보를 적합한 타이밍에 제공할 수 있을 터이다.


챗지피티는 시대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만일 학교에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 학생들을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을 갖춘 사람으로 길러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학교에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먼저 수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현장의 여러 요소들을 차근차근 모두 바꾸어 나가야 하겠지만,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할 것은 수업 방식이다. 수업은 학교의 제일 가는 핵심 요소이므로, 수업을 바꾸지 않고서는 학교의 변화를 추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교사가 설명하고 학생들은 바른 자세로 앉아, 교사의 설명을 경청하며 열심히 필기하는 형태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일부 교사들이 다양한 형태의 학생 참여 활동을 구안하여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수업 형태가 학교 전체로 확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또 특정 학교 전체에 확산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지역 전체로 확산시키는 체계가 없다는 사실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대부분의 학교에는 교사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수업 형태를 바꾸어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교사들이 한두 명 이상은 꼭 있다. 또 이미 학생 중심 수업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교사도 분명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의 수업 형태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이런 교사들이 나서서 학교의 수업 형태를 바꾸어 보자고 이야기할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먼저 수업 형태를 바꿔 본 교사가 제안을 하고 다른 교사들이 호응해서 그 학교의 수업 형태가 바뀔 수 있다면, 정말로 최상의 시나리오가 아니겠는가? 아래로부터의 변화이니 교사들의 거부감도 최소화할 수 있을 터이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의 문제는 교사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교사들의 자발성에 기대야 하는데, 인간이 자발적으로 변화에 참여하는 경우를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실제로 2년 전에, 학교 내에서 수업 형태의 변화를 모색하는 소모임을 꾸려보려고 모임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모임 제안 메시지를 보냈더니, 50여 명의 교사 중, 15명 정도가 참여하겠다고 답을 했다. 이 정도면 고무적이라 생각했다. 첫 모임에 10명쯤이 왔다. 취지를 설명하고 활동 방향을 이야기하고 첫 모임을 끝냈다. 한 달 후, 두 번째 모임에는 7~8명쯤 왔다. 세 번째 모임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처절하게 실패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 자발성에 기대는, 아래로부터의 변화 방식이 어렵다면 강제성을 수반하는, 위로부터의 변화 방식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을 터이다. 물론 강압적이고 고압적으로 ‘무조건 바꿔!’라고 얘기하는 건 실패를 불러올 것이 불 보듯 확실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학교장의 생각과 의지이다. 학교장이 수업 형태 변화에 대한 의지를 확고하게 가지고 자신의 의지를 뒷받침해 줄 몇몇 교사와 의기투합해야 한다. 그런 다음 수업 형태 변화에 대한 제반 사항을 관장할 업무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 부서에서 수업 형태 변화가 꼭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다양한 학생 중심 수업 형태에 관한 정보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또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을 다른 교사들에게 서로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사들의 수업 공개는 정말 중요하다. 서로의 수업을 보고, 보여주어야만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이 부분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지점이다.


이제는 챗지피티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된 듯하다. 인간이 요구하는 정보를 척척 제공할 수 있다는 챗지피티의 시대. 학교가 옛날 방식대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학교의 효용이 사라질까 걱정된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그 지식을 주입받는 방식에서 탈피해야만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서로에게 질문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자신이 수업 중 한 모든 활동을 써 볼 수 있도록 하는 수업 방식을 모색해야만 한다.


학교는 변화해야 한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수업부터 변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학교가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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