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학교는 오늘도 무탈하다

by 꿈강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3학년 수업을 할 때 그런 경우가 많은데, 1학년과 2학년 수업을 할 때도 만만치는 않다. 도통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멍하니 앉아 있거나 꾸벅꾸벅 졸거나 무엇인가를 열심히 끄적인다. 열심히 끄적이는 경우는 십중팔구 학원 숙제 삼매경이다.


학생들은 학교 숙제는 안 해도 학원 숙제는 한다. 어떤 학원은 숙제 세 번 안 해 오면, 퇴출시킨다고 협박하기도 한단다. 정말로 그렇게 하랴마는, 그런 칼을 휘두를 수 있는 학원이 부럽기도 하다. 학교에서야 어디 언감생심,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겠는가. 학생들이 정서적 피해를 호소하며 걸고넘어지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학생들은 왜 학교 공부는 대충 하고 학원 공부를 열심히 할까? 학생 여럿에게 물어보니, 학교 공부로는 수능을 대비할 수 없다고 한다. 내신 성적을 위해서라도 학교 수업을 잘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것도 학원에서 다 대비를 해 준다고 한다. 뭐라 할 말이 없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다. 서울 대치동이나 목동처럼 일타 강사들이 즐비한 학원이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정이 이러하다. 대치동이나 목동에 있는 학교들의 사정은 오죽할까 싶다. 아니, 어쩌면 그 학교들은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았을 수도 있겠다. 일타 강사들이 즐비한 학원들과는 애당초 경쟁이 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일타 스캔들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 드라마 흐름상 그리 중요한 장면은 아닐 듯한데, 공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나에게는 뇌리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 남자 주인공의 친구가 근무하는 교무실에서, 교사들끼리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교사 A: “왜 우리는 일타 강사처럼 수업을 하지 못할까?”

남자 주인공의 친구: “나도 공문 처리 등의 잡무가 없으면, 일타 강사처럼 수업할 수 있어.”

교사 B: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타 강사처럼 치열하게 수업 준비를 하지는 않잖아요?”


교무실에서 가끔씩 들을 수 있는 대화 내용이다. 또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임용고시에 합격하면 공립학교 교사가 되고, 합격하지 못하면 사립학교 교사가 되고, 이도 저도 아니면 학원 강사가 된다. 그런데 학원 강사가 제일 잘 가르치고, 그다음이 사립학교 교사이고, 공립학교 교사가 맨 꼴찌이다. 그만큼 공립학교 교사가 노력은 안 한다는…….


그럼 학교에서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문제는 대부분의 학교가 아무 자세도 취하지 않는 데 있다. 아, 여기에서의 ‘대부분’은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역 학교의 ‘대부분’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대개의 학교에서 이 문제의 원인을 학생들에게로 돌려버린다. 학생들의 생각과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탓한다.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탓하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 가능성은 더더욱 낮아지고 만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수능 대비 문제 풀이 식 수업에서 학원과 도저히 경쟁할 방법을 찾을 수 없다면, 그런 유형의 수업은 학원에 맡기고 학교는 교육의 본질에 집중하는 게 어떤가 하는.


내가 맡고 있는 국어 교과의 경우,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능력을 고루 함양시켜야 한다. 헌데 이제까지 학교 국어 수업에서는 오직 ‘읽기’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왜냐고? 그러면 수능을 잘 볼 수 있으니까.


문제는 학교가 ‘읽기’ 수업에서 학원에 완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수능 대비는 학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니 자, 학교는 본질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국어 교과의 모든 과목에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수업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어 교과에도 여러 과목이 있다.


우리 학교의 경우 1학년 때는 국어, 2학년 때는 문학, 독서, 화법과 작문, 3학년 때는 언어와 매체, 심화 국어, 현대문학감상, 문학과 매체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이 모든 과목을 가르치면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학교는 학원과는 차원이 다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고, 이렇게 내 생각을 쭉 풀어 써 보니, 말은 참 쉽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방법만 찾으면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교육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니다. 어느 한 사람이 시작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또 국어 교과만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수학, 영어, 사회, 과학 등등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이루고 있는 모든 교과에서 해야 할 일이다.


교육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교육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게 너무나 거창한 일이라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생들이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고 학원 공부에 집중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건 학교의 직무 유기일 수도 있을 테니 학교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학교가 학원보다 더 완벽한 수능 대비 시스템을 구축하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수도 있을 터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 또한 말로만 쉽다. 완벽한 수능 대비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한단 말인가? 그 방법을 알고 있는 학교 관계자가 있기는 있는 걸까?


이것도 어렵고 저것도 어려워 학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걸까? 개별 학교에서 학교의 문제와 위기를 인식하고, 진단하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야 할 듯한데,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없지 않아 있다. ‘나만 예민한 건가?’ 학교에는 아무런 문제도 위기도 없는데, 내가 예민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건가. 뭐, 그랬으면 좋겠다. 나의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학교는 별 탈 없이 잘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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