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종합전형과 수업의 변화
대학 입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대입전형 방법은 정시와 수시로 나뉘고 수시 전형은 다시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나뉜다.
세 가지 중 가장 단순 명료한 전형은 정시 전형이다. 수능만 잘 보면 된다. 문제는 수능을 잘 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단순하지만 어려운 전형이다. 지방 소도시의 일반적인 학생들의 입장에서 어렵다는 이야기다. 특목고나 자사고, 서울 강남에 있는 고교의 뛰어난 학생들에게 수능을 잘 보는 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 그들에게 정시는 단순하고 쉬운 전형일 수도 있다.
그 다음으로 단순 명료한 전형은 학생부교과전형이다. 학교 내신 소점을 잘 관리하고 수능 최저 기준을 충족하면 된다. 다시 말해 고교 3년 내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빼어난 성적을 유지하고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수능 최저 등급을 충족시키면 된다. 최저 등급을 충족시키면 되기 때문에 백분위를 따지는 정시 전형에 비해 수능의 중요성은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있다. 수험생들의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하는 전형이다. 3년 내내 내신 소점을 잘 관리해야 하고 생활기록부의 각종 특기사항을 풍성하고 의미 있게 채울 수 있어야 한다. 또 어떤 대학에서는 수능 최저 등급을 충족시킬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방 소도시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고 할 때 꼭 필요한 전형이다.
학종 전형의 요소 중, 내신 소점 성적과 수능 성적은 주로 5지선다형의 시험 성적으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학종 전형에서 주요 변수는 생활기록부의 각종 특기사항 기록이다. 학종 전형에서 내신 소점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학종 전형에서도 내신 성적 소점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다만 내신 소점 성적은 5지 선다형의 객관식 시험으로 결정되니, 학교 전체의 분위기나 교사의 관심도에 따라 차이가 나는 요소가 아니라는 말이다.
학종 전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생활기록부의 특기사항은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자율활동 특기사항’, ‘진로활동 특기사항’, ‘동아리활동 특기사항’, ‘행동특성 및 종합 의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율활동, 진로활동,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담임 교사가 기록하고, ‘동아리활동’은 동아리 담당 교사가,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과목 담당 교사가 기록하게 되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세특)이다. 각 과목 수업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적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 관련 각종 연수에 가 보면, 각 대학 입학사정관들도 이구동성으로 과세특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학교생활기록부를 기록할 때,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들이 준거로 삼고 있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이라는 책자가 있다. 교육부에서 책자로 제작하여 해마다 각 학교로 보내 준다. 거기에 학교생활기록부의 각종 사항을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학교생활기록부의 서술형 항목은 교사가 직접 관찰하고 평가한 내용을 근거로 입력하며 학교교육계획에 따라 실시한 교육활동 중 교사 지도하에 학생이 직접 작성한 자료(동료평가서, 자기평가서, 수업산출물, 소감문, 독후감)는 활용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지침의 핵심은 ‘교사가 직접 관찰하고 평가한 내용’이라는 말과 ‘교사 지도하에 학생이 직접작성한 수업산출물’이라는 말이다.
또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는 과세특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라고 적혀 있다.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란은 학생참여형 수업 및 수업과 연계된 수행평가 등에서 관찰한 내용을 입력한다.
이 지침의 핵심은 당연히 ‘학생참여형 수업 및 수업과 연계된 수행평가’라는 말이다. 이 두 지침을 어떻게 받아들여 학교의 교육활동을 설계하느냐에 따라 학교별로 차이가 많이 생긴다. 이 두 지침을 무겁게 여기며 학교의 교육활동, 특히 수업 활동을 설계하면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의 과세특 기록이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학종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 두 지침을 가볍게 생각하고 기존 관행대로 수업 활동을 설계하면 학생들의 과세특에 기록할 내용이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이 두 지침을 무겁게 여기며 수업 활동을 설계하여 학생들의 과세특 기록을 풍성하게 한 뒤, 학종 전형에서 좋은 성과를 내려는 A라는 고등학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A고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모든 교사에게 수업 활동 계획서와 수행평가 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모든 학교에 설치하도록 되어 있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통해 계획서의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 학생참여형 수업을 얼마나 계획했는지, 과세특 기록과 연계할 수 있도록 수행평가 계획을 작성했는지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반드시 계획 수정을 권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기 말에 활동 계획이 과세특에 잘 반영되었는지 또 검토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기록 수정을 권고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고?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는 않다. 내가 근무한 학교의 일반적인 루틴은 다음과 같다.
모든 교사에게 교과 진도 계획을 제출하게 한다. 수업 활동 계획서가 아니다. 수업 활동을 담당 교사들끼리만 의논한다. 물론 수행평가 계획서도 제출하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다. 검토 후, 권고가 없다. 아, 물론 수정 권고를 하기는 한다. 수행평가 각 영역별 반영 비율 등이 교육청 지침과 다를 경우에, 그 부분만 고치라고 한다. 과세특의 풍성한 기록을 위한 고민이나 검토는 없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싶어 할 것이다. 정시든 학생부교과든 학생부종합이든 말이다. 정시와 학생부교과 전형은 5지 선다형의 시험을 통해 성과가 결정된다. 학교의 수업 활동 계획과 실천에 따라 성과가 결정되는 전형은 학종이다.
학종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가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필연적으로 고등학교 수업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이미 수업을 변화시켜 학교를 변화시킨 고등학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변화가 우리나라 전체 고등학교로 확산하기를 바랄 뿐이다.